블랙리스트 추가조사委 ‘판사 PC’ 강제로 열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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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 반발에도 끝내 조사 강행… 개봉 과정 金대법원장 동의 구한듯
위법 의식 “개인문서-이메일 제외”… 비밀침해 등 법적 논란 커질듯
한국당, 대법원장 고발 등 대응 주목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대법원에 비판적인 법관의 동향을 파악, 관리했다는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조사 중인 추가조사위원회(조사위·위원장 민중기 부장판사)가 의혹 관련자들의 컴퓨터를 당사자 동의 없이 강제 개봉해 조사를 시작했다. 법원 내부에서도 당사자 동의 없는 강제조사는 위법이라는 반대의 목소리가 컸던 데다 자유한국당 측은 “강제조사를 시작하면 김명수 대법원장을 형사고발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논란은 증폭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사위는 26일 오후 법원 내부 전산망에 올린 글에서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조사 대상은 공용컴퓨터에 저장된 사법행정과 관련해 작성된 문서”라고 밝혔다. 조사 대상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58)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55),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전·현직 심의관 2명이 사용했던 컴퓨터 4대의 하드디스크 등 저장매체다.

이날 공지 글에서 조사위는 “최근까지 수차례 서면 및 대면 방식으로 동의를 구해왔다”며 관련자 컴퓨터 강제 개봉이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조사위는 당사자 동의를 받지는 못했지만 조사 내용 및 방식이 정당하다고 강조했다. 조사위는 “저장매체에 있거나 복구된 모든 문서를 열람하는 것이 아니다. 문서가 생성, 저장된 시기를 한정하고 현안과 관련된 키워드로 문서를 검색한 뒤 해당 문서만을 열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장매체에 들어있을 수 있는 개인적 문서와 비밀침해 가능성이 큰 이메일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또 “관련 당사자들의 참여와 의견 진술 기회를 최대한 보장한다면 사적 정보(비밀)가 침해될 개연성은 거의 없고 이런 문서의 열람 등에 당사자 동의가 필요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조사위는 컴퓨터 저장장치의 보존 조치와 보안유지 과정이 법원행정처의 협조를 받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조사위는 “사법연수원의 협조를 받아 조사 장소 입구에 사회복무요원을 배치하고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보안유지 조치에 필요한 모든 물적 설비는 법원행정처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김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조사위의 강제 개봉과 조사 방식에 동의했음을 내비친 것이다.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조사위의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자 컴퓨터 강제 개봉은 위법성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서경환 서울고법 부장판사(50)와 이숙연 부산고법 판사(48)는 법원 내부 통신망에 당사자 동의 없는 컴퓨터 강제조사는 위법하다는 취지의 글을 올린 바 있다. 조사위도 이 같은 논란 때문에 지난달 말 관련자들의 컴퓨터 저장매체를 확보하고도 조사를 미뤄왔다.

한국당 의원들이 실제 김 대법원장과 조사위원들에 대한 고발 조치를 취할지도 관심사다. 법원행정처 출신의 한 부장판사는 “‘블랙리스트’ 의혹이 검찰 손에 넘어가면 법원으로서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비밀들을 외부에 공개하는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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