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사드갈등 봉합 국면에 … “유커들이 돌아오고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3일 2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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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6명이 7만 원 어치나 먹고 갔어”

13일 오전 10시경 서울 중구 명동의 한 김밥전문점에서 만난 종업원 이모 씨(62·여)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날도 테이블 12개 중 5개 테이블에서 20명 가까운 중국인 관광객(遊客·유커)이 식사 중이었다. 이 식당은 김밥 라면 떡볶이 등을 파는 흔한 분식집이지만 중국인 손님의 요청에 따라 향신료인 실란트로(고수)를 넣은 라면도 판다.

유커들이 앉은 테이블에는 사람보다 음식 가짓수가 더 많았다. 이들은 한국에서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음식을 차려놓고 ‘항공샷’을 찍거나 가게를 배경으로 셀카를 촬영했다. 이 씨는 “중국 손님은 여러 가지 맛보려 이것저것 주문한다. 요 며칠 사이 손님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촉발된 한중 갈등이 봉합 국면에 접어들면서 곳곳에서 ‘유커의 귀환’이 감지되고 있다. 이날 명동의 한 화장품가게 앞에는 ‘재외동포비자(F4)를 가진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구인광고가 새로 붙었다. F4는 중국동포에게 발급되는 비자다. 이런 내용의 전단은 명동 상점 곳곳에서 목격됐다. 명동의 한 환전상은 “사드 배치 전까지는 아니라도 유커들이 돌아오고 있다는 게 조금씩 느껴진다”며 미소 지었다.

인천국제공항의 표정도 밝아졌다. 이날 오후 2시경 입국장 게이트 앞에는 베이징(北京)발 비행기를 기다리는 가이드 3명이 나란히 서 있었다. ‘歡迎來到韓國(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고 적힌 팻말도 오랜만에 눈에 띄었다. 가이드 이모 씨(45)는 “베이징에서 오는 10명 단체관광객을 맞으러 왔다. 유커 단체관광 팻말을 든 사람을 거의 못 봤었는데 오늘은 종종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을 찾은 유커들은 양국의 갈등이 풀리는 분위기를 반기고 있다. 명동에서 만난 중국인 안링 씨(安¤·25)는 “회사에 한국 여행 신청을 했는데 쉽게 통과됐다”면서 “쇼핑이 만족스러워 해마다 한 번씩은 한국에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성형외과와 유통업계에서는 본격적인 유커의 귀환에 대비한 홍보전이 점화됐다. 지난달 말 서울 강남의 한 대형 성형외과는 중국 시장을 겨냥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홍보를 3개월 만에 재개했다. 올해 중순까지 SNS 홍보를 했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아 중단했었다. 롯데백화점은 백화점 내부에 중국인 대상 광고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왕훙(網紅)’을 초청하는 행사를 열 계획이다. 왕훙은 온라인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이트 운영자나 1인 방송 진행자를 말한다. 파워블로거와 마찬가지다. 중국인 환자 유치사업을 하는 A 씨는 “최근 중국 업체와 미팅 자리에서 ‘앞으로 잘해보자’는 얘기를 들었다. 확실히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커의 귀환은 통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46.9% 줄었다. 3월 한한령(限韓令·한류제한령)이 내려진 뒤 4월 이후 지난해 대비 유커 감소폭이 40%대로 내려간 건 처음이다.

돌아오는 유커를 붙잡기 위해 이번 기회에 바가지요금 등 고질적인 관광 악습을 개선해야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울시 등 관련 기관들도 최근 택시와 숙박업소, 상점 등을 대상으로 현장 단속을 벌이고 있다. 서울시는 중구 남산케이블카에서 명동 호텔로 가는 중국 여성 관광객 3명에게 일반적인 요금의 16배를 웃도는 6만 원을 받아 챙긴 택시기사를 적발하기도 했다.

황성호 hsh0330@donga.com/인천=신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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