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나눈 아들… 그날 장기기증 전도사된 아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아들 기려 홍보활동 몸던진 홍우기 씨

홍우기(오른쪽) 상희순 씨 부부가 9일 서울 도봉구 자택에서 2년 전 세상을 떠나며 6명에게 장기를 나눠준 아들 윤길 씨의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홍 씨가 입은 옷은 윤길 씨가 평소 입었던 것이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홍우기(오른쪽) 상희순 씨 부부가 9일 서울 도봉구 자택에서 2년 전 세상을 떠나며 6명에게 장기를 나눠준 아들 윤길 씨의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홍 씨가 입은 옷은 윤길 씨가 평소 입었던 것이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 넥타이가 더 점잖아 보일까?’

2015년 7월 29일 저녁 홍우기 씨(68)는 닷새 앞으로 다가온 아들 윤길 씨(당시 33세)의 결혼 상견례를 준비하며 장롱을 뒤지고 있었다. 그때 ‘쿵’ 소리가 들렸다. 윤길 씨가 방에 쓰러져 있었다. 그때부터 일어난 모든 일이 홍 씨는 아직도 꿈만 같다. 구급차에 실려 간 아들, 수술실에서 나오며 “뇌출혈이 심해 이미 늦었다”고 고개를 가로젓는 의사들, 다섯 달 뒤 며느리가 될 아들의 여자친구가 목메어 우는 모습….

뇌사에 빠진 아들 곁을 지키던 홍 씨는 20년 전 세상을 떠난 자신의 친동생을 떠올렸다. 홍 씨의 동생은 평소 “내가 뇌사상태에 빠지면 장기를 나눠 달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현실로 닥치자 홍 씨 가족은 “멀쩡한 시신의 배를 가를 수 없다”며 기증을 거부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홍 씨는 후회가 커졌다. ‘동생의 부탁을 들어줬더라면 그의 일부가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있을 텐데….’

결국 홍 씨는 아내와 상의해 아들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심했다. 윤길 씨의 심장과 간, 콩팥 2개는 이튿날 20∼40대 환자 4명에게 각각 전달돼 새롭게 태어났다. 안구 2개도 시각장애인 2명이 이식받아 새 빛을 찾았다. 윤길 씨는 장기기증을 서약한 적이 없지만 헌혈의집이 보일 때마다 소매를 걷었고 봉사활동에 기꺼이 나섰다.

9일 서울 도봉구 도봉동 홍 씨 자택. 한쪽 벽에 아들 윤길 씨의 사진이 갓난아기 때부터 취업 후 찍은 것까지 빼곡히 붙어 있었다. 홍 씨가 입은 옷도 아들이 즐겨 입던 것이었다. 홍 씨는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잊혀지기는커녕 점점 커져 아무것도 버릴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홍 씨의 생활은 2년 전 그날 이후로 180도 달라졌다. 평생 해온 자동차 부품 유통업을 그만두고 장기기증 홍보에 몸을 던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온 장기기증 관련 문의 글에 일일이 답변을 적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기증 서약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서약 절차가 복잡하지 않으냐’는 글에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전화번호(1577-1458)를 댓글로 달아주거나 뇌사가 무엇인지 묻는 글에 ‘뇌가 사망해 2주 안에 심장사로 이어지지만 다른 장기는 살아있는 상태’라고 알려주는 식이다. 지금까지 홍 씨가 단 댓글은 900건에 이른다.

그는 장기기증자 유가족 모임인 인터넷 카페 ‘생명을 잇는 사람들’을 운영하는 한편 유가족 합창단 ‘생명의 소리’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유가족들이 서로 위안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기증자가 늘어날 거란 기대에서다. 언론에 소개된 이식 수혜자들의 사연은 전부 모아둔다.

가장 안타까운 일은 뇌사자가 장기기증을 서약했는데도 가족이 반대해 기증이 이뤄지지 않을 때다. 홍 씨는 “시신을 그대로 두는 게 가족에게 잠시는 위안이 될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더 커진다”며 고인의 뜻을 따라줄 것을 당부했다.

질병관리본부는 11, 12일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 장기기증 독려 메시지를 담은 조형물 ‘생명 이은 집’을 설치해 전시한다. 장기기증은 뇌사 기증자의 일부가 새롭게 살아갈 집(이식 수혜자의 몸)을 선물하는 일이라는 뜻으로 이제석광고연구소가 실제 주택과 비슷한 크기로 만들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장기기증#홍우기#상희순#홍보활동#아들#홍윤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