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제발 그만” 침묵시위 나선 청와대 이웃주민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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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처럼 조용하게 살고 싶어요” 구호 없이 피켓 들고 횡단보도 오가
9월 집회제한 가처분신청도 검토

청운효자동 ‘소음 고통’ 무언의 항의 17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 사거리에서 지역 
주민들이 손팻말을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청와대 인근에서 연일 벌어지는 집회로 인한 소음 피해를 
호소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청운효자동 ‘소음 고통’ 무언의 항의 17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 사거리에서 지역 주민들이 손팻말을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청와대 인근에서 연일 벌어지는 집회로 인한 소음 피해를 호소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17일 오전 청와대 인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 사거리에서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울려 퍼졌다. 60여 명의 이 지역 주민들은 저마다 ‘예전처럼 조용하게 살고 싶어요’ ‘학생들의 수업 방해 더 이상 안 돼요’ 등의 구호가 적힌 작은 팻말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보행 신호가 켜질 때마다 말없이 횡단보도를 오가며 행인들에게 자신들의 뜻을 알렸다.

주민들은 침묵시위의 취지에 맞춰 마이크와 확성기는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 수화 통역사가 호소문 낭독에 동석했다. 수화 통역사는 시위대 대표가 호소문을 육성으로 낭독하는 동안 곁에서 같은 내용을 손짓으로 옮겼다.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주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입니다”라는 대목에서는 입을 꾹 다물고 오른손을 가로로 세워 왼쪽 손바닥을 강하게 탁탁 내리치며 무언(無言)의 항의를 전달하는 식이었다.

청운효자동 주민들이 침묵시위에 나선 것은 청와대와 가깝다는 이유로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연일 집회와 기자회견 등을 열면서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촛불집회가 끝나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 상황이 나아지리라 믿었지만 오히려 더 심해져 견딜 수가 없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청운효자동 집회 금지 주민대책위원회(대책위)’에 따르면 올해 5월 이후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부근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경찰에 신고한 건수는 총 102건이다. 대책위 관계자는 “한 번 신고를 하면서 여러 날에 걸쳐 집회를 열겠다고 한 경우도 있어서 실제 집회 개최 건수는 300건 가까이 된다”고 말했다.

주민들에게 가장 큰 괴로움은 집회·시위로 발생하는 소음이다. 김종구 대책위원장은 “자체적으로 집회 소음을 측정했더니 현행법상 낮 시간대 소음 허용 기준인 65dB(데시벨)을 훌쩍 뛰어넘어 최고 90dB까지 측정됐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집회·시위와 표현의 자유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이라고는 하지만 그 때문에 우리 주민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며 “일상생활이 보장될 수 있도록 집회·시위를 자제해 달라”고 호소했다.

대책위는 8일부터 일주일간 주민들로부터 접수한 110여 건의 피해사항을 토대로 탄원서를 작성해 청와대와 국회, 경찰청에 전달하기로 했다. 이들은 앞서 지난달 20일에도 서울 종로경찰서에 비슷한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한 바 있다. 대책위는 또 다음 달 법원에 “주민 거주지역을 감안해 집회 개최를 제한해 달라”는 내용의 가처분 신청도 낼 방침이다.

이날 침묵시위에 참여한 주민 중 일부는 부근에서 천막농성을 벌이던 다른 시위대와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한 금속노조 조합원은 천막에 다가온 주민들에게 “집회 신고를 했으니 방해하지 말라”고 항의했다. 이에 효자동에서만 46년째 살고 있다는 주민 박모 씨(69·여)는 “자기 권리를 주장하려면 남의 권리를 침해하지 말라”며 “마이크로 유행가까지 부르는 이유가 뭐냐”고 목소리를 높여 대꾸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시위#청운동#침묵 시위#집회제한#가처분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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