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가족간첩’ 34년 만에 재심서 무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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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을호씨 등 3명 사형-옥사-자살

1980년대 초 공안당국이 조작한 일명 ‘김제 가족 고정 간첩단(이하 김제 간첩단)’ 사건으로 억울하게 사형을 당하거나 옥살이를 하다 숨진 이들에게 34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과거사 재심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김태업)는 29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가 확정돼 사형을 당한 고 최을호 씨와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한 고 최낙전 씨에 대해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김제 간첩단 사건은 1982년 8월 전북 김제시에서 농사를 짓던 최을호 씨와 최 씨의 조카 최낙전 씨가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당시 정부는 “최을호 씨가 1959년 납북돼 북한에 포섭됐으며, 조카 최낙전 씨와 최낙교 씨를 끌어들여 국가기밀을 수집·보고하는 등 간첩 활동을 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날조된 사건이었다. 최 씨 등은 당시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40여 일간 고문기술자 이근안 씨(79) 등으로부터 고문을 당했다. 특히 최낙교 씨는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였던 정형근 씨(72·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등에게서 조사를 받던 중 구치소에서 사망했다. 검찰은 최낙교 씨의 사인을 자살이라고 발표했지만 유족은 여전히 이를 믿지 않고 있다.

재판에 넘겨진 최을호 씨와 최낙전 씨는 1심에서 각각 사형과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의 항소와 상고는 모두 기각돼 원심 그대로 유죄가 확정됐다. 최을호 씨에 대한 사형은 1985년 10월 집행됐다. 최 씨는 사형장에 끌려가면서도 “나는 간첩이 아니다”라고 울부짖었다고 한다. 조카 최낙전 씨는 9년간 복역하고 석방됐지만 4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들은 “경찰의 보안관찰이 최 씨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최 씨 등이 법원의 영장 없이 불법 체포돼 구금된 상태에서 각종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해 허위자백을 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장은 유족들에게 “국가가 범한 과오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앞서 결심 법정에서는 피고인의 아들들이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최후진술을 했다. 최을호 씨의 아들 최봉준 씨는 “우리 집안은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했다. 집안 어른 세 분이 한꺼번에 다 사라지셨고 자녀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고향 마을에서는 따가운 눈초리 속에 살아야 했다”고 그간의 고통을 털어놨다.

유족을 도와 무죄판결을 이끌어낸 시민단체 ‘진실의 힘’은 선고 직후 “재심에서 여러 피해자가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고문 조작 수사관, 검사는 처벌 받은 일이 없다. 새 정부의 관심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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