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 예비고로 전락” vs “교육 획일화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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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목고-자사고 폐지… 찬반 팽팽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외국어고·국제고·자율형사립고 폐지 움직임이 구체화되면서 논란도 커지고 있다. 2015년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지정 취소 절차에 항의하는 자사고 학부모들의 집회 모습. 동아일보DB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외국어고·국제고·자율형사립고 폐지 움직임이 구체화되면서 논란도 커지고 있다. 2015년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지정 취소 절차에 항의하는 자사고 학부모들의 집회 모습. 동아일보DB
문재인 정부와 진보 진영 교육감들이 외국어고·국제고·자율형사립고를 폐지하고 일반고로 전환하려는 것은 이들 학교가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입시 위주의 교육에 치중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또 이 때문에 고교 서열화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 “설립 목적 벗어나 바로잡아야”

문 대통령의 교육 공약을 총괄한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달 한 토론회에서 현재의 고교 체제를 ‘평준화가 흐트러진 상태’라고 규정했다.

김 후보자는 “이명박 정부 때 시행된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로 평준화 일부분이 흐트러진 상태”라며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는 교육과정을 다양화, 특성화해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을 확대한다는 취지로 시작된 정책으로 이를 통해 자사고, 마이스터고 등 다양한 유형의 고교가 등장했다.

특히 김 후보자는 여러 유형의 고교 중 외국어고·국제고·자사고를 지목해 이들 학교가 설립 목적에서 일탈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김 후보자는 “이들 학교가 ‘대학입시 예비고’로 전락했다”며 “국민들에게도 여러 가지 불협화음을 자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어고·국제고·자사고에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고, 대학 입시에서 지속적으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고교 서열화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은 있다.

지난 10년간 서울대 합격생의 출신 고교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2006학년도에는 일반고 학생의 비중이 77.7%였지만 2016학년도에는 46.1%로 크게 줄었다. 반면 외국고·국제고를 포함한 특목고와 자사고 출신의 합격자 비율은 같은 기간 18.3%에서 44.6%로 급상승했다. 서울대 합격자를 많이 배출하는 학교는 특목고와 자사고가 상위권에 포진하고 있다.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외국어고에 ‘불포자(프랑스어 포기자)’ ‘독포자(독일어 포기자)’가 많아 불어·독어 전공자가 대학 수학능력시험에서 제2외국어로 아랍어를 보는 상황”이라며 “외국어 교육을 잘하겠다는 외국어고의 설립 취지는 무색해진 지 오래고, 입시교육에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안 소장은 “고교 서열화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불공정한 룰을 하루빨리 정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일괄적 폐지는 안돼”

하지만 외국어고·국제고·자사고 폐지가 교육을 획일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김재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일반고의 획일화된 교육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해 이들 학교가 만들어졌는데, 이제는 다시 일반고로 획일화하려 하고 있다”며 “이들 학교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육이 필요한 상황에서 일괄적으로 폐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폐지보다 문제점을 보완해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

이들 학교가 입시 준비 위주로 변질돼 문제라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 의견도 적잖다. 김 대변인은 “마이스터고 등 일부 고교를 제외하면 고교생 대부분의 목표는 대학 진학”이라며 “일반고를 포함해 대부분 고교가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는데 이들 학교만 입시 위주라고 비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들 학교를 폐지하는 것보다 일반고에서도 양질의 교육 기회와 교육 환경을 제공할 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더 시급하고 좋은 전략이라는 지적이다.

함승환 한양대 교수는 “학교가 한 가지 형태만 있는 것보다 다양한 교육 경험을 제공할 환경이 되어야 한다”며 “많은 학생들에게 더 다양한 교육 기회가 주어지고, 학생들이 자신의 필요에 맞는 형태의 교육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함 교수는 “눈앞에 과열된 입시 양상이 있으니 이를 없애면 해결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런 방식은 원인을 없애는 게 아니라 현상을 가리는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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