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과 여론 사이… ‘돈봉투 만찬’ 감찰 딜레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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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봉투 만찬’ 참석 검사 10명을 대면 조사한 법무부·대검찰청 합동감찰반이 법과 여론의 갈림길에서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직접 감찰 지시를 한 데다 참석자들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 형사 입건 등 엄벌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큰 상황이다. 하지만 법리적으로는 처벌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감찰반의 고민이다.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59·사법연수원 18기·부산고검 차장)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51·20기·대구고검 차장)은 각각 27일과 28일 감찰 조사를 받으며 “후배 검사들을 격려하는 취지로 금일봉을 건넸으며 특수활동비 등 관련 예산을 사용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감찰반은 이를 근거로 이 전 지검장과 안 전 국장에게서 돈을 받은 만찬 참석자들에게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처벌하기는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다수 의견이다. 대법원 윤리감사관실이 지난해 펴낸 ‘김영란법 Q&A’ 해설서에도 ‘상급 공직자 등이 위로·격려·포상 등의 목적으로 하급 공직자에게 제공하는 금품 등’은 처벌할 수 없다고 적혀 있다.

해설서에 따르면 검찰 인사·예산을 담당하는 법무부 검찰국 간부들이 이 전 지검장에게 식사 접대와 돈 봉투를 받은 일도 처벌할 수 없다. 해설서에는 ‘지방법원 사무국장 A가 격려 목적으로 같은 법원 예산 담당 사무관 B, 감사 담당 사무관 C와 저녁 식사를 하고 15만 원을 냈다면 법 위반인가’라는 예시가 담겨 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A가 위로·격려 목적으로 B와 C에게 식사를 제공했다면 직무 관련성이 있더라도 위법이 아니다’며 ‘인사이동으로 2, 3년마다 소속 법원이 바뀔 수 있으므로 같은 법원에 근무하지 않더라도 예외 사유에 해당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감찰반은 이 전 지검장과 안 전 국장이 특수활동비 등 예산을 횡령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감찰반 내부에서는 “이 전 지검장 등이 특수활동비를 빼돌려 사적 이득을 취하려 했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는 한 처벌은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검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 내사를 받았던 안 전 국장에게서 ‘돈 봉투’를 받았던 특수본 간부들에 대해 부정처사 후 수뢰죄 적용이 가능한지도 쟁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처벌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안 전 국장이 지난해 7∼10월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0·19기)과 160여 차례 휴대전화 통화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불법 행위가 있었다는 점이 입증돼야만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검찰 일각에서는 “만찬 참석자들을 기소하거나 중징계한 뒤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법적 처벌이 어렵다고 가벼운 징계로 마무리했다가는 청와대의 분노와 여론의 역풍을 피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서는 “법을 다루는 기관이 법이 아닌 여론으로 감찰 결론을 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신광영 neo@donga.com·배석준 기자
#돈 봉투 만찬#감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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