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입양 모든 과정 직접 챙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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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백모 씨(53) 가정에 맡겨진 네 살 은비(가명) 양이 6개월 만에 숨졌다. 사인은 머리를 여러 차례 맞은 탓으로 의심되는 뇌출혈. 시민단체가 은비 양의 사망 전 6개월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백 씨의 상습 폭행만 드러난 게 아니었다. 정부는 S입양원이 다른 가정에서 파양된 은비 양을 백 씨 부부에게 위탁하는 과정을 파악하지 못했고, 지방자치단체 담당 공무원은 입양 사실조차 몰랐다. 법원은 은비 양이 뇌사에 빠진 뒤에도 백 씨 부부에게 입양을 허가했다. 국가의 이런 철저한 무관심들이 백 씨의 범행을 방조한 셈이다.

정부가 제12회 입양의 날(11일)을 맞아 입양의 전 과정을 직접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이르면 이달 말 입양아의 이동 상황과 학대 피해 실태를 실시간으로 추적해 관리하는 내용의 ‘아동보호 서비스 매뉴얼’을 지자체와 민간 입양기관에 보내고, 이를 어기면 시설폐쇄 등 강력한 행정제재를 가할 방침이다.

그간 국내 입양 절차는 사실상 민간 입양기관이 주도해왔다. 정부는 입양 관련 실태조사를 벌일 뿐 실제 친부모 상담, 입양 결정, 양부모 선정·연결 등 핵심 과정은 민간 입양원이 전담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특히 법원이 입양 허가를 내리기 전 양부모가 입양아와 함께 살아보는 ‘사전 위탁’ 기간엔 아이가 학대의 사각에 방치된다. 은비 양도 백 씨 부부에게 사전 위탁됐던 지난해 4월, 물고문을 당했을 때 나타날 만한 저나트륨혈증으로 병원에 실려가 경찰에 ‘학대 피해 의심 아동’으로 신고됐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이를 몰랐다.

복지부는 개정 매뉴얼에 △입양아의 사전 위탁 및 입양 현황을 입양원이 관할 지자체에 실시간으로 보고하고 △보호자나 거주지가 바뀌면 담당 공무원이 책임지고 확인하며 △아동이 필수 예방접종을 거르는 등 이상 징후가 보이면 해당 가정을 방문해 조사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를 어긴 입양원에는 과태료를 부과하고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상황을 묵인하는 등 심각한 위반 사항이 드러나면 사회복지법인 허가를 취소하고 형사 고발할 계획이다.

입양 전 위탁 가정에 대한 전면 조사도 실시 중이다. 사전 위탁은 아동과 예비 양부모가 서로 애착을 형성하고 적응할 시간을 준다는 측면에서 권장돼 왔지만, 이 기간에 아동 보호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양부모가 입양을 포기하면 아동에게 큰 혼란을 초래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2007년 2652명이었던 입양아 수는 점차 감소해 2015년엔 절반 이하인 1057명으로 떨어졌다. 이 중 국내 가정에 입양된 아동은 1388명에서 683명으로, 국외 입양은 1264명에서 374명으로 각각 줄었다.

2015년 입양아의 출신 중 미혼모 가정의 비율은 92.3%로 절대 다수다. 은비 양의 친모인 A 씨(23)도 출산 후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며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하다가 형편이 나아지지 않자 입양을 결심했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가정 형편 탓에 입양을 택하는 친부모에 대한 상담과 지원을 법제화한다.

복지부는 우선 관할 지자체의 담당 공무원이 입양 전 친부모를 만나 기초생활 및 차상위 복지급여 등 저소득층 지원 제도를 안내하고, 해당 사항이 없다면 복지재단이나 후원자 등을 물색해주는 방식으로 ‘불가피한 입양’을 최소화할 방침이다.

이는 아동을 최대한 친부모의 손에 맡기고, 입양 절차를 국가가 책임지도록 한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에 따른 조치다. 한국은 2013년 5월 헤이그협약에 서명했지만 관련법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여전히 비준하지 못했다. 양부모 연결 절차를 중앙입양원이 전담하는 등 협약 내용을 반영한 입양특례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유주헌 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장은 “입양아의 인권을 철저히 보호하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입양#정부#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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