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광화문광장에 멧돼지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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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새벽 서울 한복판에 출현… 세종대왕상 인근서 택시 치여 즉사
먹이 찾아 북악산서 내려온듯

2일 서울 광화문광장 근처 횡단보도에 택시와 충돌한 멧돼지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트위터 캡처
2일 서울 광화문광장 근처 횡단보도에 택시와 충돌한 멧돼지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트위터 캡처
“멧돼지가 종로 한복판을 뛰어다녀요.”

2일 오전 3시 4분 경찰 112종합상황실로 다급한 목소리의 신고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커다란 멧돼지 한 마리가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주변 오피스텔 밀집지역에서 날뛰고 있다는 것. 뒤이어 2분 간격으로 ‘멧돼지 신고’가 잇달았다. 발견 장소는 정부서울청사 근처와 외교부가 있는 청사 별관 앞 세종로공원 등 광화문광장 일대였다.

경찰관 10명이 현장에 출동했다. 잠시 후 멧돼지는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근처 횡단보도 위에서 발견됐다. 경찰이 오기 직전 지나던 택시와 충돌한 것이다. 숨진 멧돼지의 길이는 약 1m, 몸무게는 건장한 성인 남성과 비슷한 80kg 정도였다.

○ ‘광화문 멧돼지’ 어디서 왔나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종로경찰서는 “멧돼지를 친 택시도 앞 범퍼만 손상됐을 뿐 운전자는 별다른 부상이 없었다”고 말했다. 멧돼지 사체는 경찰 조사 후 종로구로 넘겨져 처분됐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이번에 발견된 멧돼지의 본거지를 북악산으로 추정했다. 청와대 뒤 인왕산을 지나 사직공원을 거쳐 도심 한복판까지 내려온 것으로 보고 있다.

멧돼지가 광화문광장 일대 빌딩 숲에 나타난 전례는 거의 없다. 하지만 서울 도심 출현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종로구 사직동 사직터널 인근에 몸무게 90kg 상당의 멧돼지 두 마리가 출몰했다. 한 마리는 엽사에게 사살됐고 다른 한 마리는 도주했다. 같은 달 서대문구의 한 도로에 100kg에 육박하는 멧돼지 한 마리가 뛰어들어 달리던 택시와 충돌했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서울에서 총 1331건의 멧돼지 출몰 신고가 접수됐다.

종로서 관계자는 “그동안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에 주로 나타났는데 광화문광장 한복판에서 발견된 건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 씨(29·여)는 “매일 점심식사 후 산책하는 장소에 멧돼지가 나타난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가족과 함께 나들이 온 황모 씨(38)는 “만약 집회가 열리는 토요일에 멧돼지가 나타났다면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라며 걱정했다.

○ 올해 ‘멧돼지 장벽’ 세운다

서울의 멧돼지 출현은 2011년 한 해 43건에서 지난해 548건으로 급증했다. 지역별로는 북한산 자락과 이어진 종로 은평 성북 도봉구에 집중됐다. 멧돼지 번식기이자 먹이활동이 활발한 가을에 빈번하다. 봄에도 자주 나타난다. 겨울에 많이 먹지 못한 탓이다.

이에 따라 올해 서울시는 북한산 일대에 차단벽을 설치할 계획이다. 이른바 ‘멧돼지 장벽’이다. 길이는 3.2km에 이르며, 사업비는 약 7억 원이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의 한상훈 연구관은 “차단벽이 설치되면 북한산에서 북악산으로 넘어오는 멧돼지들을 막아줄 수 있다”고 말했다.

만에 하나 멧돼지와 갑자기 마주쳤을 때 대응 요령을 알아두는 것도 필요하다. 한 연구관은 “멧돼지는 겁이 많아 무작정 사람에게 달려드는 경우는 드물다”며 “갑자기 움직여 멧돼지를 흥분시키지 말고 주위의 나무나 바위 자동차 등에 조심스럽게 몸을 숨겨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바로 신고할 것을 당부했다. 신고가 접수되면 멧돼지를 포획할 엽사들이 현장에 출동한다. 한 연구관은 “차단벽 설치와 개체 수 조절도 중요하지만 북한산 서식환경을 바꿔 멧돼지가 도심을 찾지 않도록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며 “멧돼지의 먹이가 될 만한 열매나 식물 등을 많이 캐거나 주변 환경을 훼손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지연 기자 lim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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