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던 드러머, 가위손으로 거듭났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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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기술교육원 1961명 수료
밴드 접고 알바하며 PC방 전전하다 정장 미용사 보고 미용기술 배워
사업실패 딛고 41세 되어서야 어머니께 첫 월급 선물하기도

16일 서울 노원구의 한 미용실에서 스태프로 일하고 있는 이대원 씨(오른쪽)가 손님의 머리를 다듬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6일 서울 노원구의 한 미용실에서 스태프로 일하고 있는 이대원 씨(오른쪽)가 손님의 머리를 다듬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6일 오후 서울 노원구 ‘이준헤어’ 미용실에서 밝은 표정으로 손님들의 머리를 다듬던 이대원 씨(24)는 재작년 이맘때 친구들과 PC방을 전전하며 방황했다. 12세 때 드럼스틱을 처음 잡은 뒤 밴드를 했고 대학 실용음악과에 합격했다. 그러나 어려운 집안 형편에 부모님 건강까지 악화되면서 음악을 이어가긴 쉽지 않았다. 대학을 포기한 그는 음식점 서빙부터 택배 상하차까지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일이 끝나고 밤새 컴퓨터 게임에 빠지기도 했다.

방황하던 그에게 변화가 온 것은 지난해 1월.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간 어느 날, 정장을 입고 가위를 든 남성 미용사가 그렇게나 멋져 보였다. 미용사인 동생이 한때 권유했다는 사실도 불현듯 생각났다. 그 길로 동생이 다닌 서울 남부기술교육원 헤어디자인과에 전화를 걸었다. 3월 입학한 뒤 이 씨의 생활은 온통 미용으로 채워졌다. 통학 시간을 아끼려 아예 기숙사에 들어갔다. 미용에 푹 빠진 그를 교수도 아꼈다. 일과가 끝난 뒤 혼자 연습을 할 때면 들러서 컵라면과 김치를 챙겨주기도 했다.

이 씨는 지난해 11월 국가기술자격증을 따고 12월 정식으로 취업했다. 일을 마치면 ‘업계 선배’인 동생과 새벽까지 미용 연습을 한다. 그는 “숙식이 무료였고 교수님이 직접 교육생들의 취업을 하나하나 연결해줬기 때문에 오로지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 씨의 목표는 동생과 함께 서울 외곽에 미용실을 차리는 것이다.

서울 송파구의 한 건물 기계실에서 일하는 최인환 씨(41)는 10일 태어나서 처음 받은 월급을 모두 어머니께 선물했다. 최 씨 역시 방황하는 20, 30대를 보냈다. 에어컨 설치부터 남성지갑 판매까지 주변에서 ‘괜찮은 아이템’이라고 하던 온갖 일에 손댔지만 실패였다. 그는 “귀가 얇았다”고 했다.

그렇게 덜컥 불혹(不惑)을 맞았다. 구직 홈페이지를 뒤지던 그에게 사촌형은 기술을 배우라고 조언했다. 공부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담을 쌓았지만, 마음먹고 지난해 서울 동부기술교육원 에너지진단설비과에 입학해 독하게 공부했다.

마침내 지난달 23일 최 씨는 갓 개장한 주상복합건물 관리직으로 직장을 얻었다. 비록 9일 치였지만 첫 월급은 무엇보다 뿌듯했다. 용돈 한 번 제대로 드리지 못한 어머니께 마음의 짐을 조금 덜어낸 느낌이라고 했다. 그는 “기술만 배운 것이 아니라 ‘한때 실패자’였던 다른 교육생들을 만나며 인생관도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 씨와 최 씨처럼 서울시 기술교육원에서 변신을 꿈꾼 2016학년도 정규과정 교육생 1961명의 수료식이 17, 20일 열린다. 서울의 중부·동부·남부·북부 등 네 군데 있는 기술교육원은 만 15세 이상 서울시민에게 전액 무료로 취업 교육을 실시하는 곳이다. 실습 위주의 훈련을 통해 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직장인을 배출하는 것이 목표다. 2015학년도 수료생 47%가 수료 3개월 안에 취업했고 73%는 관련 공인자격을 취득했다.

서울시 기술교육원은 17일까지 2017학년도 교육생을 모집한다. 1년 주간과정과 6개월 야간과정으로 구성된 정규과정은 58개 학과 1842명을, 단기과정은 25개 학과 915명을 뽑는다. 조리 외식, 헤어 뷰티 등 청년층 구인 수요가 높은 일부 과목은 만 35세 이하를 대상으로 하는 ‘청년희망디딤돌 과정’으로 운영된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이대원#드러머#미용사#서울시#기술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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