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5·18직후 서둘러 피해보상… 헬기 총격 흔적은 못지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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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전일빌딩 리모델링 논란에 국과수에 감정 의뢰해 진실규명
10층에 헬기 총탄 흔적 150개 발견… 7월까지 보존방안 마련키로

나의갑 씨가 14일 광주 동구 운림동 자택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일빌딩 관련 내용을 다룬 광주·전남언론인회 회보를 들고 그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나의갑 씨가 14일 광주 동구 운림동 자택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일빌딩 관련 내용을 다룬 광주·전남언론인회 회보를 들고 그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지난해 12월 광주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에서 1980년 5·18민주화운동 때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총탄 자국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감정에 나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헬기 사격의 흔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5·18민주화운동 직후 신군부는 당시 무력 진압의 흔적을 대부분 지웠지만 이곳의 흔적만큼은 없애지 못한 것이다.

○ 5·18 직후 곳곳에 총탄 자국  


 1980년 5월 27일 오전 8시 전일빌딩 7층. 당시 전일방송 기자이던 김종일 씨(69·전 광주KBS 보도국장)가 뉴스부 사무실에 들어섰다. 계엄군이 이날 새벽 금남로 옛 전남도청 주변에서 최후까지 항쟁하던 시민군을 무력 진압한 직후였다. 김 씨가 살펴본 사무실은 유리창이 깨져 있고 창문 옆 기둥에는 선명한 총탄 자국 2개가 있었다. 김 씨는 계엄군이 외부에서 전일빌딩으로 사격한 것임을 직감했다.

 같은 시간 전남일보 기자 나의갑 씨(68·전 전남일보 편집국장)는 전일빌딩 3층 편집국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사무실 바닥에 탄피가 수북이 쌓여 있고 빌딩 뒷면 유리창에는 총탄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나 씨는 총탄 구멍은 전일빌딩 뒤편의 광주YWCA 건물에 모여 있던 대학생들을 계엄군이 무력 진압하면서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광주YWCA건물은 대학생 집결소로 ‘투사회보’를 만들던 곳. 시민군 2명이 숨지고 29명이 체포됐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옛 전남도청과 금남로는 피로 물들었다. 5월 21일 오후 1시 금남로에서 계엄군 집단 발포, 5월 27일 새벽 계엄군 무력 진압 등이 이뤄졌다. 옛 전남도청과 전일빌딩 등 곳곳에는 37년이 흘렀지만 5월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 지워진 흔적들 

 신군부는 5·18 직후 시민들에게 피해 신고를 받아 보상을 해 줬다. 악화된 민심을 서둘러 봉합하려는 의도였다. 나 씨는 “당시 옛 전남일보 편집국 바닥에 쌓여 있던 탄피는 서둘러 모아 버렸다”라고 했다. 또 “5·18 희생자가 속출했던 상황에서 총탄 자국, 탄피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소소한 것이었다”라고 강조했다. 나 씨는 신군부가 피해 신고를 받은 것은 민심을 달래며 5·18 흔적을 지우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옛 전남도청 등은 세월이 흐르면서 개보수가 이뤄졌다. 하지만 전일빌딩 일부 공간은 개보수가 없었다. 전일방송과 옛 전남일보는 1980년 12월 신군부의 언론통폐합으로 문을 닫았다. 전일방송은 광주KBS와 통합됐고 옛 전남일보는 당시 전남매일과 합쳐져 광주일보가 됐다.

 전일방송은 문을 닫기 전까지 전일빌딩 7∼10층을 썼다. 김 씨는 지난해 9월 국과수 현장 감식을 돕기 위해 전일빌딩 7층 기둥을 살펴봤지만 탄흔을 찾지 못했다. 건물 내부 구조가 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일방송이 문을 닫은 이후 10층은 거의 쓰이지 않았다. 김종일 씨는 “10층은 전일방송 강당으로 직원들이 놀거나 라디오 방송 무대로 사용했던 곳”이라고 했다.

○ 37년 만에 드러난 진실

13일 광주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 10층에서 경비원 송모 씨(71)가 총탄 자국을 가리키고 있다. 송 씨는 “총탄 자국이 발견된 공간은 1980년 이후 공실이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13일 광주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 10층에서 경비원 송모 씨(71)가 총탄 자국을 가리키고 있다. 송 씨는 “총탄 자국이 발견된 공간은 1980년 이후 공실이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국과수는 광주시에 전일빌딩 10층에 헬기에서 사격한 것으로 추정되는 총탄 흔적이 최소 150개 있다는 감정서를 보냈다. 감정서에는 전일빌딩 외벽에 총탄 흔적 35개가 있다고 적혀 있다. 전일빌딩은 1965년부터 1980년까지 4차례 증개축했다. 현재는 광주도시공사 소유다. 광주시는 지난해 전일빌딩 리모델링 논란이 일자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했다.

 5·18기념재단 등 5월 단체는 “국과수 감정서는 신군부의 자위권 발동 주장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라며 “전일빌딩을 원형 보존하여 사적지로 지정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옛 전남도청의 원형 보전과 미흡한 5월 진실 규명을 위해 향후 새 정부와도 긴밀히 협력하겠다”라고 밝혔다.

 광주시는 전일빌딩 보존 방안 마련을 위한 전담팀을 구성해 5월 단체 등을 상대로 의견 수렴에 나섰다. 관련 단체와 전문가 자문위원회 등의 의견 수렴을 거쳐 7월까지는 보존 방안을 세울 방침이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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