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상근]그래도 희망은 대한민국에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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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률 50% 그리스, 졸속 화폐개혁 인도… 유럽의 테러, 美 인종갈등 나라마다 홍역 앓는 지구촌
국정 농단에 휘청거린 한국, 촛불시위로 평화적 의사 표현
국민 깨어있는 한 절망은 없다… ‘헬조선’ 자괴감에서 벗어나길

김상근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
김상근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
 돌이켜보니 2016년은 여행을 많이 다닌 해였다. 단과대 학장직 임기를 마친 후 연구학기가 주어졌고, 수행하는 연구와 집필의 특성상 현장 답사를 여러 번 나가게 됐다. 올해만 4개국을 현장 답사했는데, 이스라엘 미얀마 그리스 그리고 인도였다.

 올 1월 방문했던 이스라엘은 절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이 아니었다. 정착촌 건설로 촉발된 팔레스타인인들과의 정치적 불화는 정점에 달했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자살폭탄 위협 때문에 유대인들은 늘 긴장감 속에서 살았다. 아우슈비츠의 철창에 갇혀 있었던 유대인들이 이제 베들레헴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장벽 속에 가두어 놓고 있으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냉혹한 논리가 좁은 이스라엘 땅을 숨 막히게 만들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 아웅산 수지의 나라로 유명한 미얀마는 불과 수년 전에 처음으로 국경의 빗장을 열어젖히고 외국인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순수의 땅’을 처음 방문하는 기대감은 길거리에 천막을 치고 살아가는 이재민의 혹독한 가난을 목격하면서 안타까움으로 변했다. 1160달러의 국민총생산(GNP)으로 세계 184위의 말석을 차지하는 미얀마의 2015년 경제 순위(세계은행 자료)는 이 나라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난관을 극복해 나가야 하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그리스는 더 충격이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배출하면서 서구 정신세계를 이끌었던 영광의 나라 그리스는 청년실업률 50%에 신음하는 절망의 땅으로 변했다. 세금을 감당할 수 없어 상점들은 문을 굳게 닫았고, 일자리가 없는 청년들은 삼삼오오 골목에 죽치고 앉아 지나가는 관광객을 바라보며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절망과 한숨이 그리스의 일상이 됐다.

 인도 여행 또한 충격의 연속이었다. 거대한 화강암 산을 음각(陰刻)하여 만든 엘로라 석굴 앞에서 할 말을 잃었지만, 인도 정부가 최근 졸속으로 실시한 화폐 개혁은 상상을 초월하는 혼란을 야기했다. 부정부패로 모은 검은돈을 일소하기 위해 예고 없이 모든 지폐를 바꾸어 버린 파격적인 조치는 높이 평가할 만했다. 그러나 정작 새로 도입할 화폐 신권을 충분히 준비해 두지 않아 13억 인도인들은 대혼란에 빠졌다. 지폐가 모자라 나라 경제가 휘청거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인도인들도 “이게 나라냐?”며 탄식을 쏟아냈다.

 올해 여행한 모든 나라에서 고질적인 절망의 끝자락을 보았다. 테러, 자연재해, 경제난, 인종 갈등 그리고 부정부패로 세계가 홍역을 앓았다. 각국의 국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범세계적이었고, 위기는 글로벌한 현상이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배출한 미국이지만 여전히 흑인들은 길거리에서 백인 경찰관들의 총격에 죽어 나가고 있고, 유럽에서는 이슬람국가(IS)를 비롯한 과격분자들의 테러 때문에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시장도 문을 닫을 정도였다.

 그래도 대한민국이란 작은 나라에서 희망의 끝자락을 본다. 수백만 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지만 다친 사람도, 연행된 사람도 없었다. 질서를 지킨 시민들, 공권력 사용을 자제했던 경찰과 시민을 믿고 청와대 접근을 순차적으로 허용했던 법원의 결정에 찬사를 보낸다. 대규모 시위를 마치고 거리 청소를 하는 곳은 오직 대한민국뿐이다. 촛불과 태극기가 같은 시각에 등장했지만 우려했던 이념의 물리적 충돌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2016년을 상징하는 단어는 ‘자괴감’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 단어를 먼저 사용했지만, 권력을 잘못 사용한 것처럼 이 단어도 잘못 사용했다. 올 한 해 자괴감은 오로지 대한민국 국민들의 몫이었고, 청년들은 그 자괴감을 극대화해 이 땅을 ‘헬조선’이라 불렀다.  

 단테가 ‘신곡’에서 묘사한 지옥은 불꽃이 어두운 밤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끔찍한 곳이다. 그러나 광화문과 각 도심에서 수백만 개의 촛불이 지상에서 피어올라 어두운 밤하늘을 환하게 밝혔으니, 이곳을 ‘헬조선’이라 부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시민이 밝힌 촛불은 권력의 일탈로 촉발된 2016년의 자괴감을 불태우며, 희망찬 새해의 여명을 밝히고 있다. 이제 어두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질 병신년과 함께 자괴감을 떨쳐내고, 밝아 올 정유년과 함께 희망찬 민주국가를 만들어 가자. 국민이 깨어 있는 한 희망은 대한민국에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김상근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
#여행#그리스#청년실업#대한민국#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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