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엽총 총격… 안전관리는 매번 ‘헛방’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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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회 회원 피격’으로 본 부실관리
구입-허가 받는데 한달이면 충분… “사냥 간다” 허가증 제시하면 내줘
잠금장치도 절단기로 제거 가능… 전문가 “반출규정 더 강화해야”

 
등산동호회 회원 유모 씨가 범행에 사용한 엽총. 서울 중랑경찰서 제공
등산동호회 회원 유모 씨가 범행에 사용한 엽총. 서울 중랑경찰서 제공
“사람에게 총을 쐈습니다.”

 11일 오후 1시 반경 112 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다. 서울 중랑구 묵동 주택가에 한 30대 여성이 허벅지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옆에 서 있던 40대 여성이 경찰을 보자 말했다. “제가 범인입니다.”

 근처에는 범행에 쓰인 엽총이 있었다. 난데없이 발생한 주택가 총격 사건에 주민들은 한동안 불안에 떨었다. 12일 서울 중랑경찰서에 따르면 유모 씨(46·여)와 조모 씨(39·여)는 같은 등산 동호회 회원이다. 올 5월 유 씨는 동호회에서 갑자기 제명됐다. 사소한 오해와 갈등이 원인이었다. 유 씨는 조 씨 탓에 제명됐다는 생각에 앙심을 품고 복수를 계획했다. 칼과 망치 대신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엽총을 선택했다.

 정신질환이나 전과가 없는 일반인이라면 엽총을 갖는 것이 어렵지 않다. 수렵 면허를 따서 실제 사냥에 나서기까지 빠르면 18일, 길어야 한 달도 채 걸리지 않는다. 수렵면허 필기시험 응시 및 합격(약 10일), 1종 수렵 면허 취득을 위한 강습 5시간, 신체검사 1일, 면허 발급 기간 5일, 경찰서 총포안전교육 1시간 등이다. 올 9월 유 씨는 이 절차를 마쳤고 150만 원짜리 중고 엽총과 총탄 10발을 구입해 경찰서에 보관했다. 그리고 수렵장이 개장하는 겨울을 기다렸다.

 유 씨는 11일 오전 7시경 서울 양천경찰서 신정2지구대에서 총포 소지허가증을 제시하고 총을 받았다. 앞서 10월 18일에는 “충남 공주시에 사냥하러 갈 계획”이라며 총기를 찾을 수 있는 ‘보관해제신청서’를 미리 제출했다. 경찰 관계자는 “지구대에선 보관 업무만 담당한다. 엽총을 내어줄 때 구체적으로 수렵 목적이나 장소를 묻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 씨의 범행을 막을 마지막 장치도 무용지물이었다. 경찰이 보관 중인 엽총은 방아쇠에 잠금장치가 걸려 있다. 수렵장 관리직원이 잠금장치를 풀어야 한다. 지난해 2월 이틀 사이에 엽총 사건으로 6명이 숨지자 경찰이 세운 대책이다. 하지만 유 씨는 전동 절단기를 이용해 잠금장치를 제거한 뒤 보란 듯 엽총 가방을 어깨에 메고 조 씨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총기를 반출할 때 당사자의 감정 상태, 대인 관계, 채무 관계 등을 꼭 물어봐야 한다”며 “프라이버시에 민감한 미국에서도 이런 절차를 거친다. 이제 한국에서도 총기 안전을 고려한 대안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훈상 tigermask@donga.com·김단비 기자
#엽총#총격사건#반출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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