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성호]12월의 기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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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호 사회부 차장
이성호 사회부 차장
 1만3429명. 한 해 발생한 교통사고 사망자 수다. 하루 37명이 길 위에서 죽어 갔다. 정확히 25년 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역대 가장 많은 사람이 교통사고로 숨진 1991년이다. 13년이 지난 2004년 교통사고 사망자는 6563명. 절반으로 줄었다. 선진국은 이렇게 되기까지 보통 30년씩 걸렸다. 한강의 기적까지는 아니어도 이 정도면 ‘기적 같은 일’이라 평가할 만하다.

 ‘빨리빨리’ 문화의 후유증 탓일까, 샴페인을 일찍 터뜨린 탓일까. 성큼성큼 줄어들던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가 주춤하기 시작했다. 2004년 이후 1000명을 줄이는 데 6년이나 걸렸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사망자 감소율도 평균 2.2%에 불과했다. 전체 규모가 크게 줄었기 때문에 감소세는 어느 정도 둔화될 수 있다. 인구가 5000만 명이고 도로를 달리는 차량이 2000만 대나 되니 어쩌면 이 정도 수준을 마지노선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특히 올해 사망자 추이에 각계의 관심이 높다. ‘6년에 1000명’이라는 감소세를 넘어설지, 내년에 3000명대 진입이 가능할지 때문이다. 다행히 현재까지 전망은 밝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 10월까지 사망자는 3433명이다. 아직 두 달이나 남았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76명(9.9%)이나 줄었다. 감소율로는 2002년(10.8%) 이후 14년 만에 가장 컸다.

 올해는 유난히 교통사고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2월 음주운전 문제를 다룬 동아일보 보도 후 단속과 처벌 강화를 촉구하는 여론이 거세졌다.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등지에서 발생한 대형 교통사고의 충격적인 장면이 블랙박스를 통해 공개되면서 대형 차량의 위험성도 불거졌다. 음주운전 방조범 처벌, 암행순찰차 집중 투입 등 강력한 법 집행이 이어졌다. 여론의 변화가 정부기관의 변화를 이끌어내면서 사망자가 많이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연말까지 사망자를 400명 이상 줄일 거라는 기대가 조심스럽게 나온다. 만약 실현되면 2004년에 이어 두 번째 기적이라고 부를 만할 것이다. 비록 400명을 넘지 못해도 내년 3000명대 진입에 파란불이 켜지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상황이 녹록지 않다. 음주운전 단속기준 강화는 실제 법 개정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0.03%로 낮추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를 통과할 기미가 없다. 여전히 ‘규제’로 보는 시선 탓이다. 뒷좌석 안전띠 착용 의무화도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 택시 등 사업용 차량 업계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승객이 안전띠 착용을 거부하면 운전사가 과태료를 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내년에도 여론이, 정부의 법 집행이 올해와 같을지 장담할 수 없다. 여론은 부침이 있고 법 집행은 강약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선거일이 언제가 될지 현재로서는 불확실하지만 2012년을 떠올리면 전망은 어둡다. 18대 대선이 치러졌던 그해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오히려 전년도를 넘어섰다. 2000년 이후 사망자 감소세가 역행한 유일한 해였다.

 교통사고 사망자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게 더 이상 기적처럼 여겨지면 안 된다. 사망자를 줄이기 위한 생활과 정책이 우리 사회에 일상처럼 자리 잡아야 교통 후진국의 오명을 벗을 수 있다. 그러려면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들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 20여 일 남은 2016년 12월, 기적이 일어나기를 희망한다.

이성호 사회부 차장 starsky@donga.com
#교통사고 사망자#교통사고#음주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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