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물 터진 ‘도로 지하화’… 하늘 높은 반대에 삐걱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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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道 한남~양재 구간 제자리
서초구, 지상 60만㎡에 공원 등 계획… 市 “강남북 불균형 심화” 난색

서부간선 성산~금천 구간 공사 중단
주민들 “학교 100m 밖에 환기구… 학생들 오염물질에 노출” 저지

 서울 시내의 주요 도로를 지하로 옮기고 지상에는 공원이나 주거·상업시설을 조성하는 ‘도로 지하화(地下化)’가 곳곳에서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지역 간 형평성 논란이나 환경오염을 우려하는 반대 여론이 강하게 불거지면서 대부분 진행이 더뎌지거나 시행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서울 서초구는 8일 미국 보스턴의 ‘빅디그(Big Dig)’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니엘 커크우드 하버드대 교수 등을 초청해 ‘경부고속도로 지하화와 도시혁명’이라는 주제의 국제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서초구가 추진하는 경부고속도로 서울 구간(한남 나들목∼양재 나들목) 6.8km의 지하화 사업의 가능성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빅디그는 ‘푸른 괴물(green monster)’로 불리던 4km 길이의 고가도로를 지하 터널로 대체하고 원래 도로가 있던 자리를 녹지로 바꾼 프로젝트다.

 서초구도 경부고속도로 해당 구간을 지하화해 약 60만 m²의 지상 공간에 공원과 각종 거점 시설을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해당 구간을 관리하는 서울시가 반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일대에 국제교류복합지구 개발이 진행 중인데 강남권에 또다시 대규모 개발 사업이 추진되는 건 서울 전체를 볼 때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시 관계자는 “하루 종일 통행량이 많은 경부고속도로에서 장기간 공사를 진행함으로써 빚어지는 부작용도 심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공사를 시작한 도로 지하화 사업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시가 추진 중인 서부간선도로 지하화 사업이다. 서울시는 올 3월 성산대교 남단에서 서해안고속도로 금천 나들목까지 10.33km 구간을 지하화하는 공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구로구 주민들이 “지하도로의 환기구가 학교와 불과 100∼200m 거리에 있어 학생들이 오염물질을 고스란히 마시게 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올 8월부터 일부 공사가 잠정 중단됐다.

 양천구 신월 나들목에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까지 7.53km 구간에 지하도로(제물포터널)를 건설하는 국회대로 지하화 사업도 마찬가지다. 여의도 일대 주민들은 공사 중 발생할 소음과 분진, 개통 후 교통량 증가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결국 착공이 8년 넘게 미뤄지다 지난해 양천구 지역에서만 ‘반쪽짜리’ 공사가 시작됐다.

 과거 오세훈 전 서울시장 재임 때 남북 3축, 동서 3축의 총연장 149km짜리 대규모 지하도로망 사업 등 다양한 도로 지하화가 구상됐지만 대부분 흐지부지됐다. “공사 비용과 기간이 지상 도로에 비해 훨씬 큰 만큼 단체장의 ‘임기 내 치적’ 목적으로 추진하면 성사되기 어렵다”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고승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서부간선도로 사업과 유사한 10km 규모의 일본 도쿄(東京) 천변(川邊)지하도로 사업은 계획 수립부터 완공까지 총 30년이 걸렸다”라며 “성급한 추진보다는 시간이 오래 걸려도 꾸준한 설득과 여론 수렴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황태호 taeho@donga.com·유원모 기자
#도로#지하화#경부고속도로#서부간선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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