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훈]‘혼족’ 전성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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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소비자경제부 차장
김상훈 소비자경제부 차장
 “조조 영화를 봤어. 그 다음엔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혼자 보내는 휴가도 나쁘지 않더라.”

 얼마 전 친구가 이틀짜리 휴가를 쓴 다음에 한 말이다. 아내는 약속이 있다고 나가 버리고, 아들은 학교에 가버리니 혼자 할 게 없더란다. 시간이 아까워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영화관이며 카페를 돌아다녔다. 친구는 “40대 후반에 혼자 놀기란 걸 해보니 의외로 괜찮던데…”라며 웃었다.

 혼자 삶을 즐기는, 이른바 ‘혼족’ 문화가 많이 정착된 듯하다. 과거에 젊은층에서만 유행하던 것이 지금은 중장년층까지 꽤 확산됐다. 혼자 밥을 먹으면 혼밥, 혼자 술을 마시면 혼술, 혼자 여행 가면 혼행, 혼자 놀면 혼놀…. 혼족 문화와 관련된 신조어들은 이미 누구에게나 익숙한 보통명사가 됐다. 인터넷에는 혼밥족 레벨 테스트까지 돌아다닌다. 20, 30대는 오래전에 접했을지도 모르겠지만 40대 이후 세대에겐 낯설 수 있으니 한번 테스트해 보시라.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나 라면을 혼자 먹을 수 있다면 1레벨은 통과다. 푸드코트, 패스트푸드점, 분식집, 중국집 같은 일반음식점이 2∼5레벨이다. 여기까지는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그 다음부터는 망설이는 사람들이 나올 것 같다. 6레벨이 전문요리점, 7레벨이 패밀리레스토랑, 8레벨이 2인분이 기본인 음식점이다. 마지막 9레벨은 바로 술집이다. 술집에서 당당히 혼술을 할 수 있으면 최고의 경지에 오른 셈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사람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힐끔힐끔 쳐다봤었다. 그 사람의 등짝만 봐도 외로움이 느껴지는 듯했다. 요즘에는 ‘혼자=외로움’이란 등식이 사라졌다. 혼족은 외롭지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도 않는다. 대인관계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도 없다. 혼족 문화는 자발적으로 편안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다.

 부정청탁금지법 때문에 혼족 문화가 확산된다는 해석도 나온다. 법 시행 이후에 빨리 귀가해 집에서 혼자 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편의점이나 온라인쇼핑몰에서 술이나 안주, 술잔 같은 것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반면 숙취해소 음료 판매는 줄었다. 접대가 줄어드니 폭음이 줄어 숙취해소 음료를 덜 찾는다고 한다.

 지난주 어느 날 저녁에 10년 넘게 이어져온 친목모임에 갔다. 1년에 서너 번 모여 안부를 묻고 술을 마신다. 나이가 한두 살이라도 많은 형이 1차 술값을 내면 기분 내키는 사람이 2차를 내는 식이었다. 이번 모임에 술값을 내지 않은 사람은 다음 모임에 술값을 냈다. 이랬던 ‘우리들의 문화’는 이번에 깨졌다. 얼마씩 내야 하느냐, 계산기를 두드려 봐라…. 이 모임에는 기자, 공무원이 들어있다. 모두 청탁금지법의 적용 대상. 술값은 많이 나오지 않았지만 나눠 내야 했다.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영 맘에 안 드네. 다음부터는 각자 집에서 먹자.”

 청탁금지법이 오늘로 시행 한 달을 맞았다. ‘각자내기’만 하면 법을 위반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사람을 만날 수 있다지만 뒷맛은 개운하지 않다. 업무 연관성이 없는데도 직종과 신분 때문에 ‘호의’가 ‘부정청탁’으로 둔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태를 피하기 위해 만남을 줄이게 된다.

 물론 부정청탁을 없애려는 법의 취지에는 동의한다. 다만 정서적으로 낯선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질까. 나는 자발적으로 혼족이 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어울림을 피하다 의도치 않게 혼족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생각이 기우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상훈 소비자경제부 차장 corekim@donga.com
#부정청탁#부정청탁금지법#혼족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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