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OK-책임 NO” 사립유치원 두얼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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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립유치원들이 유아 모집·선발을 통합 관리하는 전자 시스템에 참여하게 하려면 공립유치원 수준의 재정 지원을 사립에도 해줘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그러나 사립유치원 측은 재정 지원 대가로 유치원의 소유 구조를 법인으로 전환하는 등의 공적 책무는 지지 않겠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온 가족이 동원돼 유치원을 찾아다니며 줄을 서야 하는 불편은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소속 사립유치원의 이 같은 주장은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가 ‘유치원 원아 모집·선발에 관한 조례’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19일 연 공청회 자리에서 나왔다. 서울시의회 이정훈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내년부터 공·사립 구분 없이 모든 유치원이 ‘유치원 입학 관리 시스템’(처음학교로) 같은 전자 시스템을 활용해 유아를 모집·선발할 수 있다는 내용의 조례를 8월 발의했다. 물론 기존 방식의 선발도 가능하다. 하지만 교육부는 2018학년도 선발 때부터 전자 시스템 도입을 의무화할 방침이다. 서울시교육청 역시 이 제도 도입을 주장해온 터라 내년부터는 기존 방식이 아니라 전자 시스템을 사실상 의무적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한유총 등 사립유치원 측은 “유치원비가 거의 들지 않는 공립유치원에 지원자가 몰려 사립유치원에 미달 사태가 발생하고, 유치원 서열화를 초래한다”며 “‘출발선’(재정지원금)을 비슷하게 해줘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정혜손 서울시교육청 유아교육과장은 “학부모들이 ‘정보 공개를 너무 안 하는 것 아니냐’고 반발하는데도 사립유치원의 의견을 반영해 경쟁률 등 원서접수 결과는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공청회에 참석한 한유총 김득수 이사장은 “초중고교는 공·사립 구분 없이 정부 지원을 똑같이 받는데 유치원만 다르다”며 “사립유치원에도 공립유치원에 준하는 재정적 지원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서울시의회 김경자 의원이 “재정 지원을 더 해주면 법인화를 하는 등 국·공립 수준의 통제를 받을 의향이 있느냐”고 묻자 김 이사장은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국가”라며 거부했다.

 현재 모든 초중고교가 공·사립 구분 없이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사립 초중고교는 사립학교법에 따라 개인이 아닌 ‘학교 법인’이 운영한다. 학교 법인은 이사회를 구성해 학교 운영에 대한 관리 감독을 맡겨 학교 운영을 투명하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를 마련한다. 반면 법인이 운영하는 일부 유치원을 제외한 나머지 사립유치원은 원장 개인이 유치원을 소유·운영한다. 전국 4291개 사립유치원 중 개인 소유 유치원은 3739개다.

 공청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유치원 학부모 김남희 씨는 “맞벌이 부부는 유치원 설명회, 접수 추첨 과정에 참여하는 일이 쉽지 않고 일가친척의 도움을 받을 수 없으면 아예 유치원 지원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사립유치원들이 여러 가지 재정 지원을 목적으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노지원 기자 zone@donga.com
#유치원#교육청#학교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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