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제균]광화문 땜질 광장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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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비게이션이 일상화되기 전, 유럽 소도시나 마을에서 길을 찾으려면 중심의 교회부터 더듬어 가면 됐다. 작은 마을에도 대개는 수백 년 된 교회 앞에 광장이 있다. 고딕 양식 교회의 첨탑은 멀리서도 잘 보이고, 광장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주변에선 1, 2차 세계대전 당시 그 지역 출신 전사자 명단을 빼곡히 적은 기념물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광장은 전통을 계승하고 애국·애향심을 고취하는 통합의 장(場)이다.

 ▷한국에는 광장 문화가 없다. 시대 흐름에 따라 정치색을 변주해왔을 뿐이다. 현 서울광장인 서울시청 앞 광장은 1961년 5·16군사정변을 성공시킨 박정희 소장이 선글라스를 끼고 기세가 시퍼렇게 등장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현 여의도공원인 과거 5·16광장에서는 국군의 날 퍼레이드나 대규모 정치 유세를 했다. 민주화 이후 서울광장은 시위와 집회의 메카로, 이후 조성된 광화문광장은 세월호 천막으로 상징된다. 지금도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광화문광장 입구로 들어서면 분향소의 향 냄새부터 맡아야 한다.

 ▷광화문광장 양쪽 차도의 화강암 돌길을 아스팔트 포장 도로로 교체한다는 소식이다. 2009년 70억 원을 들여 조성한 돌길의 보수비용이 공사비의 40%인 28억 원이나 들었기 때문이란다. 유럽에선 로마 때 조성한 돌길을 아직까지 차도로 쓸 정도로 멀쩡한데 7년 만에 땜질하는 것은 한국형 인재(人災)다. 지금도 유럽에선 높이가 50cm도 넘는 막대형 화강암을 촘촘히 박아 반(半)영구적인 돌길을 만든다. 가로 12cm, 세로 18cm에 높이가 10cm에 불과한 납작 화강암을 깔고도 버텨내길 바랐다니, 문외한이 봐도 한심하다.

 ▷유럽의 고풍스러운 돌길을 흉내 내려면 땅속까지 들여다봤어야 했다. 그나마 광화문 차도의 일부는 아스팔트로 덮고 일부는 돌길로 남겨놓는다니, 얼마나 더 누더기로 만들려나. 이제라도 제대로 된 돌길을 만들거나, 영국의 트래펄가 광장처럼 차량 유입을 제한하거나, 아니면 한국 전통 방식을 복원해 제대로 조성하길 바란다. 한국도 대표 광장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광화문#광장#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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