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조용휘]구태 못 벗어나는 지방의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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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휘·부산경남취재본부장
조용휘·부산경남취재본부장
 조선·해운업 사태, 지진과 원전 문제, 악취 발생, 지하철 파업 등….

 국내 조선·해양산업의 메카인 부산에서 연일 ‘악재’가 터져 지역 민심이 흉흉하다. 하지만 시민대표 기관인 부산시의회와 각 기초의회의 역할과 움직임을 보면 실망이 크다. 시민단체가 주도하고 있는 한진해운 살리기에 부산시의회의 건의문 채택이 유일한 대응일 정도다. 추석을 전후해 부산 주변에서 433회의 지진과 여진이 발생하면서 원전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데도 묵묵부답이다.

 오히려 현안은 뒷전인 채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부산시의회 복지환경, 도시안전, 교육위원회 소속 시의원 21명은 22일부터 일제히 공무 국외 여행이란 명목으로 해외연수에 나섰다. 공무원과 관련자 18명도 동행했다. 심사를 거쳤다고 하지만 외유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시민 혈세로 마련된 공식적인 연수 예산은 1억200여만 원.

 시의원 8명을 포함해 14명으로 짜인 도시안전위원회 연수단은 8박 10일 일정으로 미국 동부와 캐나다를 둘러보고 있다. 코스는 도시 시설이라지만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센트럴 파크, 자유의 여신상, 캐나다 몽모랑시 폭포 등 유명 관광지 위주로 짜여졌다. 13명으로 구성된 복지환경위원회 연수단은 8박 10일 일정으로 호주와 뉴질랜드를 방문 중이다. 장애·노인복지 분야 시설을 둘러보고 있지만 뉴질랜드 마운트쿡 국립공원과 밀포드사운드 등 유명 관광지도 포함돼 있다. 교육위원회 연수단 9명은 핀란드와 스웨덴, 노르웨이를 7박 9일 일정으로 방문 중이다.

 해외연수단원 가운데는 당초 연수 대상자 선발 과정의 불공정 문제로 시비가 됐던 시의회사무처 공무원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말썽을 빚고 있다. 이 문제는 한 의원이 본회의 5분 발언을 통해 문제를 지적하려다 의장단과 시의회 사무처의 만류로 공론화되지는 못했다. 시의회 입법정책담당관실 직원 가운데 5년 임기 중 아직까지 한 번도 못 간 직원이 있는 반면 두 번 간 직원과 9개월 만에 간 직원이 포함된 것이다. 백종헌 부산시의회 의장은 “형편에 맞게 진행된 줄 안다.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채워졌다면 잘잘못을 가리겠다”고 했다.

 최근에는 부산 동래구의회 6선인 C 의원이 한 취재기자에게 “기자면 다야, 이××야”라는 막장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이 의원은 “저것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애들, 초선 여자애가 위원장이랍시고…” 등 입에 담지도 못할 막말로 동료 의원까지 폄하했다. C 의원은 시민의 반발이 거세지자 26일 동래구의회 본회의에서 공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지역 상황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이런 의회와 의원에게 어떻게 일을 맡기겠느냐”며 “자기들이 제왕인줄 안다”고 꼬집었다. 또 “시민이 불안해 잠을 설치고 있는데도 시의회가 해외연수라는 명목으로 외유를 갔다면 피신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적어도 민의 대표라면 ‘봉산개도 우수가교(逢山開道 遇水架橋)’의 자세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부산에는 왜 산을 만나면 길을 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 그런 의원은 없는 것일까.
 
조용휘·부산경남취재본부장 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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