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의 한국 블로그]‘행복’이란 말을 잊고 사는 한국인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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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이라 몽골 출신 다문화여성연합 대표
이라 몽골 출신 다문화여성연합 대표
2년 만에 고향 몽골에 다녀왔다. 수도 울란바토르의 거리는 그 사이에도 많이 바뀐 듯 보였다. 여기저기 높은 건물들이 늘어났고 거리에 보이는 사람들은 다들 젊어 보였다. 시내 중심가에 가 보면 흡사 서울의 한 거리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몽골 인구 300만 명 중 한국에 와 있는 유학생, 근로자 등 몽골인이 3만4000명에 달하니 한국 문화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1990년대 들어 급격한 민주화를 거치면서 몽골인들의 적극적인 해외 이주가 시작됐다. 우선 비자가 상호 면제됐던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건너가기 시작했고, 한국에는 2000년대 초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들어왔다. 한국에서 몽골과 한국, 그리고 터키 사람들이 인종적으로 유사한 민족이라는 얘기를 가끔 듣는다. 또 터키인들은 한국인들과는 다 형제라는 얘기를 자주 꺼낸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가 운영하는 필리핀 국제학교에서 한번은 터키인 학생과 한국인 학생이 다퉈 부모들끼리도 관계가 불편해지고 학교도 꽤 난감한 입장에 처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학교의 남자 직원이 자기가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나섰다. 그는 터키인 학부모와 회의실에 들어가더니 30분도 안 돼 같이 웃으며 나왔다. 어떻게 해결했느냐고 물었더니, 6·25전쟁 때 터키 군인들이 제일 용감하게 싸워줬다는 얘기와 함께 그때의 고마움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단다. 한국인과 터키인이 불화할 이유는 없다고 설명하니 아이들이 싸워서 생긴 오해들이 한순간에 해결됐다는 얘기다.

 빠른 세계화에 힘입어 다른 나라, 다른 문화 속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이제는 그리 새삼스럽거나 주목을 받을 만한 일이 아닌 세상이다. 외국에서 사는 한국인들이 오래전부터 나라별로 ‘한인회’라는 단체를 운영하고 있듯이, 몽골인들도 나라별로 ‘몽골인협의회’라는 것을 한참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에도 있고 미국 일본에도 있다.

 해외 거주 몽골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외교부와 함께 주최한 포럼에 참가했다. 총 25개국 160여 명의 대표단이 참석해 해외 교포들과 고국 정부와의 협력 증진, 몽골어 및 문화 홍보 등을 주제로 3일간 토론 등의 행사를 진행했다. 포럼이 끝나고 참가자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데 미국, 유럽에 사는 교포들 모두 한국 식당을 가고 싶다고 한다. 몽골 속 한국 문화의 인기는 10여 년이 지나도 여전하다. 울란바토르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외식을 할 때 우선적으로 꼽는 곳이 한국 식당이다.

 몽골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의 60%가 중국인이고 한국인은 10% 정도지만, 드라마나 문화 등 한류에 힘입어서 몽골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해마다 늘고 있다.

 몽골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오랜만의 수다가 끝이 없다. 사춘기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대학 입학부터 군 입대까지 아이들 커가는 이야기, 남편 이야기 등이다. 한국 얘기가 나오다 보니 한국에서의 바쁜 생활, 직장, 경제활동, 문화 등 얘기가 길어진다. 배울 것도 많고 부러운 점도 많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행복하겠네?”라는 질문을 받고 선뜻 “물론”이라고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행복에 대한 정의는 개인별로 다르겠지만, 너무 바쁘게들 살고 있어서 충분히 행복해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세계에는 230개가 넘는 국가가 있고, 이 중 코카콜라가 판매되는 나라는 199개국이라고 한다. 한국은 경제규모 순위로 세계 10위권이다. 1960년대 초까지 아프리카 소말리아보다 어렵던 나라가 이제 경제지표로만 보면 당당한 선진국이다. 그럼에도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계속 하위권이란다. 행복으로 가는 문은 찾는 자에게 더 크게 보인다. 너무 바쁘면 행복이란 단어를 잊고 살게 되지 않을까.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근면과 역동성은 칭찬받아야 하지만 효율을 향한 끝없는 질주에서 벗어나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쉬어 보면 어떨까. 내가 찾고 지향하는 행복의 패러다임을 조금만 바꿔 보면 어떨까.

이라 몽골 출신 다문화여성연합 대표
#몽골#터키#한국#행복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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