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없이 토론하며 스스로 배워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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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영어교육도시 국제학교를 가다

노스런던컬리지잇스쿨(NLCS) 제주의 12∼13학년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모둠별로 앉아 질문을 하고 있다. NLCS 제주 제공
노스런던컬리지잇스쿨(NLCS) 제주의 12∼13학년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모둠별로 앉아 질문을 하고 있다. NLCS 제주 제공
책상 위에는 교과서 대신 종이 여러 장이 놓여 있다. 프레젠테이션 화면에는 인구 피라미드 그래프가 띄워졌다. 8월 30일 지리 수업의 주제는 ‘유년 인구(0∼14세)’다. 교사는 질문부터 던진다. “유년 인구가 많은 나라는 어디일까요?”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학생 18명이 손을 든다. 교사는 교과서를 읽지 않고, 학생은 고개 숙이고 책만 보지 않는다. 교과서가 없기 때문이다.

제주 서귀포시 노스런던컬리지잇스쿨(NLCS) 제주의 10학년(한국 학제 중3에 해당) 여학생반 수업의 한 장면이다. NLCS 제주는 1850년 설립된 영국 명문 사립학교 NLCS의 분교로 한국 정부가 해외 유학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2008년부터 만든 제주영어교육도시에 2011년 9월 문을 열었다. 유초중고 통합 과정으로 학비는 1년에 기숙사 비용을 포함해 5000만 원 선이다. 학급당 학생 수는 22명을 넘지 않는다. 현재 500여 명의 시니어(중고등) 학생이 기숙사 7개 동에 거주하고 있다. 교내에 메디컬센터와 체육관, 수영장 등이 있고 골프, 승마 등 150여 개의 방과 후 활동이 개설돼 있다. 8월 현재 총 1153명이 재학 중이며 한국 국적 학생이 984명, 이중·외국 국적 학생이 169명이다. 모든 수업은 외국인 교사가 영어로, 국어와 한국사 과목은 한국인 교사가 한국어로 진행한다. 졸업생들은 영국 옥스퍼드대, 미국 예일대 스탠퍼드대, 서울대 연세대 등 국내외 명문대에 입학했다.

이 학교 수업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교과서가 없고 △한 가지 주제를 깊이 탐구하며 △발표, 토론 중심으로 수업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교과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이 혼자 자습할 때에만 참고한다는 점에서 한국 교육과 다르다. 수업 시간에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한 가지라도 깊이 있게 배우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둔다. 2011년부터 이 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친 백성현 대입 상담교사(44)는 “학생 스스로 원리를 깨치고 나면 해당 원리를 다른 영역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많은 정보를 알려줘 학습 부담을 가중시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수업에서 교사는 일방적인 지식 전달자가 아니다. 지리 수업이지만 사실관계를 암기하게 하는 대신 ‘유년 인구가 많은 나라의 장단점, 해결책’ 등을 스스로 생각하도록 돕는다. 학생들은 교사가 보여주는 그래프를 스스로 해석한 뒤 자신의 의견을 발표한다. 누구든 손을 들고 질문이나 답변을 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엉뚱한 답변을 한 학생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여기서는 ‘시끄러운 아이’가 훌륭한 학생으로 인정받는다. 5년 전 9학년으로 입학해 현재 13학년에 재학 중인 김경민 양(18)은 “답변 내용보다 태도가 더 중요하다”며 “평소 질문이나 발표를 많이 하면 시험 점수가 좀 낮더라도 결과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했다.

교사는 학생들이 개념을 이해했다고 판단되면 출력물을 나눠준다. 학생들은 교과서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하거나 옆자리에 앉은 친구와 협업해 출력물의 빈칸을 채워야 한다. 예컨대 유년 인구가 많은 국가들의 지리적 위치를 묘사하고, 유년 인구가 많아지는 현상의 의미를 사회 경제 문화적 범주로 나눠 생각해 본 뒤 정부 시민단체 개인의 역할은 무엇인지 나름의 답을 구해 보는 식이다. 핵심은 ‘생각하지 않으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너선 테일러 NLCS 제주 마케팅·커뮤니케이션 디렉터(38)는 “NLCS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지 않는다”며 “교과서 없이 발표와 토론 중심으로 한 주제를 깊이 다루면 놀랍게도 학생들의 몰입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서귀포=노지원 기자 zone@donga.com
#노스런던컬리지잇스쿨#nlcs#제주영어교육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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