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샥스핀의 정치학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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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 지느러미로 만드는 샥스핀은 중국을 대표하는 전통 음식이다. 중국인들은 행운을 가져오는 건강식이라며 결혼식 같은 축하모임에서 샥스핀을 즐겨 먹는다. 하지만 중식의 대가 이연복 셰프가 운영하는 식당에선 샥스핀을 찾을 수 없다. 올 1월 그는 채널A의 ‘먹거리 X파일’ 200회에서 그 이유를 밝혔다. 4년 전 ‘먹거리 X파일’을 통해 산 채로 상어의 지느러미만 잘라내 바다에 버리는 끔찍한 동물학대를 알게 된 뒤 메뉴에서 빼버렸다는 것이다.

▷인간의 식탐으로 상어를 고통스럽게 죽이는 것도 모자라 새끼 상어의 무차별 남획이 자행되면서 국제사회가 나섰다.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은 2014년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귀상어 등 5종을 보호 대상으로 지정했다.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 등 많은 항공사도 샥스핀 운송에서 손을 뗐다. 중국에서도 3년 전 화공약품을 사용한 ‘가짜 샥스핀’이 대량 유통된 사실이 폭로돼 난리가 났다.

▷샥스핀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건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저우언라이 당시 총리가 국빈 만찬에 샥스핀을 내놓으면서부터다. 현 시진핑 국가주석은 반(反)부패운동의 하나로 공식 연회 메뉴에서 샥스핀을 빼도록 했다. 샥스핀을 제공하는 감옥도 있다. 보시라이 전 충칭 시 서기 등 부패 범죄를 저지른 고위급 인사들이 대거 수감된 친청 감옥이다. 극도의 환대와 부패, 샥스핀의 정치적 함의는 이처럼 무겁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의 11일 오찬을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그치지 않는다. 샥스핀 송로버섯 같은 고급 재료를 사용한 ‘호화 메뉴’ 논란에 멸종위기종까지 먹어치운 ‘부적절한 메뉴’ 논란이 추가됐다. 환경운동연합은 어제 국내 호텔의 샥스핀 판매 실태를 발표하며 샥스핀 추방운동을 시작했다. 외교 행사든 국내 행사든 청와대 식탁에 올리는 메뉴는 정치적 행위로 해석되는 법이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 칼국수가 그랬다.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들이 샥스핀의 함의를 몰랐다면 직무태만이고, 알고도 그랬다면 무책임하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샥스핀#중국 전통 음식#이연복 셰프#먹거리 x파일#동물학대#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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