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 환자가 본 해운대 교통사고 “운전면허 관리 너무 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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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년 8월 2일 13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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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와이고수 캡처
사진=와이고수 캡처
‘브레이크 없는 폭주’로 17명의 사상자를 낸 부산 ‘해운대 교통사고’ 운전자가 뇌전증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며 운전면허 관리의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 가운데 뇌전증을 앓고 있다는 한 누리꾼의 글이 눈길을 끈다.

1일 뇌전증 때문에 공익요원으로 복무했다는 23세 A 씨는 인터넷 커뮤니티 ‘와이고수’에 ‘뇌전증 환자가 본 이번 해운대 교통사고’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주 쓰러지고 경기를 일으켰지만 유명한 한의사에게 약 처방을 받고 10년 간 평범한 인생을 살았다”고 밝혔다.

이어 “21세 1월, 재수 생활이 끝나고 고삐가 풀려 불규칙적인 생활을 반복하다 어느 날 친구네 집에서 쓰러져 발작을 일으켰다”며 “규칙적으로 살고 잠을 충분히 자면 내가 앓고 있는 약한 정도의 뇌전증으로는 발작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A 씨는 “이번 해운대 교통사고는 명백히 운전자의 잘못”이라면서도 “행정절차상에도 문제가 있다. 뇌전증 환자에게 운전면허를 부여할 때 보다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뇌전증은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을 가능성이 높아 운전면허 결격 사유가 된다. 하지만 운전자 스스로가 뇌전증 병력을 밝히지 않으면 면허취득을 제한할 방법이 없다. 이에 허술한 운전면허 관리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A 씨는 “현재 2년째 약을 복용중이다. 약을 먹고 나서부터는 이렇다할 증상이 단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무섭다. 내가 언제 쓰러질지 모르기 때문에”라고 심경을 털어놨다.

그는 ‘해운대 교통사고’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을 소개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간질(뇌전증) 환자의 두 팔을 자르거나 두 다리를 자르는 법을 만들자. 자식도 못 낳게 하자’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A 씨는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나는 너무 세상이 무섭다.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의 입장에서, 뇌전증 환우들이 겪는 차별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취업시 뇌전증 환자라는 것을 알리면 60%가 취업을 거절당하고, 직장 생활 중 뇌전증 환자임이 밝혀질 경우 40%가 해고 처분을 받는다는 대한뇌전증학회의 조사 결과도 있다.

한편, 앞서 지난달 31일 오후 5시 16분경 부산 해운대구 좌동 해운대문화회관 사거리에서 김모 씨(53)가 몰던 푸조 차량이 신호를 어긴 채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질주하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보행자들을 덮친 뒤 차량을 잇달아 들이받는 7중 추돌사고를 냈다. 이 교통사고로 3명이 숨지고 14명이 부상했다.

이후 김 씨가 지난해 9월 뇌전증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이번 사고가 운전자의 뇌전증 때문일 수 있다는 추정이 나왔다. 하지만 경찰은 이번 사고가 운전자의 뇌전증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인과관계가 확실치 않아 뇌전증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기행(奇行)운전 습관에 따른 것인지 추가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박예슬 동아닷컴 기자 ys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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