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원 부당 이득’도 구속했던 진경준, ‘9억원 뇌물우정’ 게임왕 김정주와 몰락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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陳 검사장 구속기소…檢 치욕의 날

이금로 특임검사팀이 29일 진경준 검사장(49)을 9억5000만 원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하자 검찰에선 “똑똑하고 욕심 많던 ‘엘리트 진경준’이 검찰 사상 최악의 탐관오리(貪官汚吏)였다”라는 말이 나왔다. 이날은 진 검사장 개인에게는 ‘사회적 사망’이 선고된 날로, 검찰 조직에는 신뢰가 송두리째 흔들린 치욕적인 날로 기록되게 됐다.

○ 金, 陳… 서울대 재학 당시 일본 연수에서 재회

진 검사장은 환일고에 다니던 1985년 무렵 친구의 소개로 김정주 NXC 회장(48·넥슨 창업주)을 알게 됐다. 진 검사장은 서울대 법대, 김 회장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86학번)로 진학했고 일본 해외 연수 프로그램에서 다시 만나 가깝게 지냈다.

진 검사장은 서울대 법대 3학년인 1988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이듬해 행정고시에도 합격했다. 1995년 초임으로 검사들이 선망하는 서울중앙지검에 발령을 받았다. 그는 1996년 7월 미리 사 둔 열차표 1장을 피서객에게 팔아 4000원의 부당 이득을 챙긴 암표상을 이례적으로 구속기소했다. “정의감이 넘쳤거나 공명심이 넘쳤거나 둘 중 하나”라는 말이 나온다. 1999년엔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까지 수료하고 명함에 하버드 e메일 계정을 적어 뽐냈다.

김 회장도 1994년 넥슨을 창업한 뒤 히트작을 쏟아 내며 게임 업계의 신화로 성장했다. 1996년 출시한 ‘바람의 나라’를 비롯해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던전앤파이터’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큰 부(富)를 움켜쥐었다.

김 회장은 2005년 진 검사장에게 넥슨 비상장 주식을 매입할 특혜를 줬다. 진 검사장은 한발 더 나아가 주식 매입 자금 4억2500만 원까지 김 회장에게서 받아냈다. 진 검사장은 이 주식을 넥슨재팬 주식으로 교환한 뒤 지난해 120억 원대의 주식 대박을 쳤다. 진 검사장은 장모에게서 빌린 돈으로 넥슨 주식을 매입한 것으로 공직자윤리위원회를 속였다.

진 검사장은 이명박(MB)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파견됐다가 돌아온 2008년 2월경 넥슨홀딩스가 리스한 제네시스 차량을 달라고 요구해 타고 다녔다. 이듬해 3월 차량 인수 비용 3000만 원도 받았다. 진 검사장은 2005∼2014년 11차례에 걸쳐 김 회장 측에게서 자신 또는 가족의 해외여행 경비 5011만 원도 받았다.

김 대표는 주변에 “(진 검사장의 반복된 요구를 들어주면서) 정서적으로 강간을 당한 심경”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검찰은 김 회장을 순수한 피해자로 보지 않는다. 김 회장은 엘리트 검사인 진 검사장을 ‘든든한 방패막이’로 보험을 들어 회사 리스크를 관리했고 넥슨이 관련된 민사 또는 형사 사건을 상담했다. ‘현직 검사가 대기업의 집사 변호사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 나온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2010년 무렵 “진 검사장이 다른 검찰 고위 간부, 정부 고위 인사, 모 저축은행 회장과도 어울려 다닌다”는 뒷말이 무성했지만 엘리트 검사를 상대로 한 감시나 견제 장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정작 진 검사장은 공식 석상에서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인용해 “일부 부유층의 금전 만능주의와 도덕 불감증에 경종을 울린다”라고 말하는 등 표리부동(表裏不同)한 모습을 보였다.

○ 檢은 혁신 부르짖지만 싸늘한 시선


진 검사장은 올 3월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에서 주식 대박 사실이 드러나자 “내 돈으로 샀다”, “처가에서 빌린 돈으로 주식을 샀다”라며 거짓말을 이어 갔다. “뭐 이런 ××가 다 있느냐”라며 분노한 김수남 검찰총장이 이달 6일 특임검사를 투입하자 그제야 “주식 매입자금도 김 회장 돈”이라고 실토했다. 김 회장도 뇌물 공여 혐의로 기소되고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3부(부장 최성환)가 넥슨의 횡령, 배임, 탈세 의혹 수사에 착수해 두 사람의 ‘빗나간 30년 우정’은 파국을 맞았다.

진 검사장은 2010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 비리를 내사 종결한 뒤, 대한항공 임원이던 서용원 한진 대표를 만나 자신의 처남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게 한 사실까지 드러났다. 엘리트 검사의 치명적 뇌물 스캔들에 검찰 조직의 신뢰는 추락했다. 대검찰청은 검찰개혁추진단(단장 김주현 대검 차장)을 구성하고 검찰 조직문화의 문제점을 대대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장관석 jks@donga.com·신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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