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사 “재입국 보장” 수백만원 요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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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만의 불법체류자 자진신고제… 뒤에선 불안심리 이용한 ‘비양심 상술’ 극성
법무부, 9월까지 자진 출국땐… 해당자 입국제한조치 풀어줘
별도 비용없이 진술서 쓰면 되는데, 행정사 “못들어올수도…” 폭리 대행

서울 영등포구 대림2동에 위치한 한 행정사 입간판. 불법 체류자 자진 출국 기간을 맞아 불법 체류자 상담을 알리고 있다. 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
서울 영등포구 대림2동에 위치한 한 행정사 입간판. 불법 체류자 자진 출국 기간을 맞아 불법 체류자 상담을 알리고 있다. 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
6년 만에 찾아온 기회다. 한국에서 10년째 불법 체류 중인 중국동포 장모 씨(34·여)는 가족 생각에 눈물을 훔쳤다. 장 씨는 돈이 필요했다. 중국에 남아 있는 부모님과 아들 뒷바라지는 그의 몫이었다. 여행비자로 한국에 들어와 직업소개소를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일자리를 구했다. 그가 구할 수 있는 일은 간병인과 파출부 자리뿐이었다. 더 나은 직장을 얻고 싶었지만 불법 체류자 신분이 가로막았다. ‘신분세탁’이 필요했다.

법무부는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 동안 자진 출국하는 불법 체류 외국인에게 불법 체류에 따른 입국 제한 조치를 면제해주고 있다. 2010년 이후 6년 만이다. 6년 전 그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까 봐 겁이 났다. 망설이는 사이 기한은 끝났다. 이번에는 어떻게든 불법 체류자 신분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행정사를 찾았다. 상담원은 “잠깐 쉬고 온다고 생각하라”며 재입국을 보장하는 대가로 600만 원을 제시했다. 그는 석 달 치 월급이 넘는 비싼 금액에 다른 행정사를 알아보고 있다.

출입국 절차 업무를 대행하는 행정사들이 때 아닌 ‘불법 체류자 특수’를 누리고 있다. 본보 취재 결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일부 행정사는 불법 체류 외국인들을 상대로 수백만 원씩 받아 챙기고 있었다. 13일 행정사 사무소 30여 개가 밀집한 영등포구 대림동에서는 9월까지 손님을 한 명이라도 더 들이기 위해 행정사들마다 입간판을 세우거나 현수막을 걸어놓고 있었다.

이들은 불법 체류자의 간절함에 편승해 폭리를 취했다. 진술서 대리 작성비만 50만 원이 들었고 중국에서의 비자 발급 절차까지 대행할 경우 평균 200만∼300만 원을 요구했다. A 행정사는 “혼자 출국했다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많이 봤다”며 돈을 더 들여서라도 확실하게 하길 권했다. 100% 한국으로 되돌아올 수 있게 보장한다는 ‘바오첸(保簽)’ 서비스는 최소 500만 원 선이었다.

하지만 실제 자진 출국 신고는 비용이 따로 들지 않는 간단한 절차다. 본인이 유효한 여권과 항공권을 준비해 출국하는 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진술서만 작성하면 된다. 관악구에서 행정사 사무소를 운영하는 한광섭 씨(47)는 “중국 출장비를 고려해도 수백만 원은 너무 과하다”고 말했다. 중국동포 김용운 씨(57)도 “혼자서도 나갔다 들어온 지인이 많다”며 비싼 비용에 혀를 내둘렀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까지 자진 출국 제도로 출국한 불법 체류 외국인은 1만2000여 명으로 지난해 5300여 명보다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불법 체류자들이 주로 일했던 공사 현장과 병원 등에서는 갑작스레 빠진 인력 탓에 대체 인력을 구하느라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 얌체 행정사들은 이를 악용해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행정사들의 악행을 법적으로 규제하긴 어렵다. 경찰관계자는 “단가가 정해져 있지 않은 서비스 영역이기 때문에 수사 대상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황필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48)는 “비용 청구 자체는 불법으로 보기 어렵지만 ‘재입국을 100% 보장한다’는 것은 민형사상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
#행정사#폭리#불법체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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