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공기는 기본권” 환경기준 넘는 경유차에 세금폭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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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미세먼지와의 전쟁: 발빠른 선진국들]

관광 대국 프랑스에서는 2010년 이후 심한 대기오염으로 에펠탑이 스모그에 가려 안 보이는 일이 잦아졌다. 2014년 3월 스모그가 5일간 이어지자 파리 시는 17년 만에 차량 2부제를 전격 도입했다. 홀짝운행제를 어긴 차량에는 22유로(약 2만9000원)의 벌금을 매겼다. 시 당국은 대신 시민들에게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과 벨리브(자전거 공유)를 공짜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차량 통제 방침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리 시민 64%가 반대했다. 특히 배달차량 운전자들은 “벌금을 내더라도 어쩔 수 없이 차량을 운행해야 한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파리 시 당국은 “국민 건강이 위태로운 비상 상황”이라며 700여 명의 경찰을 동원해 도심에서 차량을 강력히 통제했다.

시 당국의 강단 있는 조치 덕분에 파리의 미세먼지 농도는 6%나 줄어 정상을 회복했고 파리 시는 하루 만에 차량 2부제를 풀었다. 파리 시는 지난해 3월에도 봄철 미세먼지가 많아지면서 스모그 현상이 심해지자 하루 동안 차량 2부제를 했다. 이런 당국의 철저한 관리로 올 3월은 스모그로 인한 차량 통제 조치 없이 지나갔다.

선진국 지도자들은 대기오염을 국가 위기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 국민에게 깨끗한 공기조차 공급하지 못하는 정권은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판단 아래 과감한 개혁에 나선 것이다. 유럽과 미국 등이 주도하는 ‘맑은 공기 정치학(clean air politics)’은 미증유의 미세먼지 공포 앞에 갈팡질팡하는 한국 지도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달 5일 영국 지방선거에서 무슬림 최초로 런던 시장에 당선돼 ‘유럽의 오바마’로 불리는 사디크 칸(45)은 취임 직후부터 ‘대기오염과의 전쟁’에 나섰다. 칸 시장은 2019년부터 런던 도심을 ‘초저배출구역(ULEZ)’으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ULEZ는 유럽연합(EU)의 자체 경유차 배기가스 규제 등을 충족하지 못하는 차량이 벌금을 내지 않으면 통과할 수 없는 지역을 뜻한다.

EU의 경유차 배기가스 규제는 1992년 ‘유로1’에서 출발해 2013년 ‘유로6’까지 강화됐다. 유로6는 디젤차가 1km를 달릴 때 질소산화물(NOx)을 0.08g까지 배출하는 것을 허용한다. 칸 시장이 도입하려는 ULEZ 기준은 차량별로 다양하다. 모터사이클(유로3·운행 13년 미만), 승용차(휘발유 유로4, 운행 14년·디젤 유로6, 운행 4년 미만), 버스(유로4, 운행 6년 미만) 등이 그것이다.

칸 시장의 개혁안은 도심 대부분을 포괄하는 ULEZ에서 배기가스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경유차들에 교통혼잡료와 별도로 12.5파운드(약 2만1200원)의 ‘대기오염세’를 내도록 했다. 런던의 명물 택시인 ‘블랙 캡’도 현재는 대부분 경유차지만 2018년부터는 경유차 모델에 더 이상 신규 택시면허를 주지 않을 방침이다.

산업혁명 시절 스모그의 도시로 알려진 런던은 최근 대기 질이 크게 개선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경유차 등에서 나오는 질소산화물로 인한 대기오염은 여전히 심각한 편이다. 런던 시는 칸 시장의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질소산화물 등에 따른 대기오염으로 해마다 4300명의 런던 시민이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하고 있으며 기후변화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구 밀도가 높은 프랑스와 영국 등에서 경유차 매연이 미세먼지의 주범이라는 점은 최근 한국 상황과 비슷하다. 지난해 9월 폴크스바겐의 배기가스 배출량 조작 논란 이후 유럽 국가들은 경유차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경유차 비중이 2014년 63.9%에서 지난해 57.2%로 6.7%포인트 떨어졌다. 2012년 72.9%에서 3년 만에 15.7%포인트 줄어든 것이다. 영국 역시 2014년 50.1%에서 지난해 48.4%로 소폭 하락했다.

지난해 8월 ‘청정전력계획(Clean Power Plan)’이라는 야심 찬 기후변화 대응 프로젝트를 선포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화력발전소가 즐비한 공화당 거점 지역구의 정치인과 경제인, 주민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현란한 정치술을 펴고 있다. 공화당 소속 연방의원들은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있지만 주지사들은 연방정부의 경제 지원을 받기 위해 화력발전소 중심의 경제구조 개선에 나서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청정전력계획’은 2030년까지 미국 내 발전소의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를 2005년 대비 30%에서 32%로 높이고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를 22%에서 28%로 높이는 게 핵심이다. 미 연방정부는 실제 실행 권한을 가지고 있는 주정부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시장 지향적 방식을 택했다. 국가 발전량의 40%를 차지하는 석탄화력발전소를 줄이는 대신 태양광과 풍력 등 청정에너지 발전에 투자하는 주에는 연방정부가 인센티브를 주고, 탄소배출 한도를 채운 주와 남긴 주가 배출권을 사고파는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2003년 10월부터 전국적인 디젤차 규제를 시작했던 일본 정부는 2015년 2월 초미세먼지(PM2.5) 배출을 억제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공장이나 소각로에서 나오는 매연 및 질소산화물 등에 대한 규제 강화 외에 대기오염방지법으로 규제되지 않는 잡초 태우기 등도 규제했다. 환경청은 급유 중에 증발한 휘발유가 휘발성 유기화합물(VOC)이 돼 PM2.5의 원인이 된다며 자동차나 주유소에서도 대책을 세우도록 했다. 일본 기상협회는 현재 PM2.5 수준의 초미세먼지 위성 자료를 매일 온라인으로 공개하고 있다.

파리=전승훈 raphy@donga.com /워싱턴=이승헌 /도쿄=서영아 특파원
#경유차#세금폭탄#청정전력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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