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작은 생명도 이웃, 편견없이 대해주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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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길고양이 돌봄모임 ‘십시일냥’
서식 지도-급식소 만들어 보호, SNS 통해 구조… 입양 알선도

회장 정민수 씨(27·왼쪽에서 두 번째)를 포함한 ‘십시일냥’ 회원들이 23일 한양대 서울캠퍼스에서 아기 고양이 ‘이냥이’와 함께 포즈를 취하며 길고양이 보호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이냥이는 십시일냥이 17일 서울 왕십리역 근처에서 구조한 아기 고양이로 곧 새 주인에게 입양될 예정이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회장 정민수 씨(27·왼쪽에서 두 번째)를 포함한 ‘십시일냥’ 회원들이 23일 한양대 서울캠퍼스에서 아기 고양이 ‘이냥이’와 함께 포즈를 취하며 길고양이 보호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이냥이는 십시일냥이 17일 서울 왕십리역 근처에서 구조한 아기 고양이로 곧 새 주인에게 입양될 예정이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세상은 너무나 어두웠다. 내가 살던 곳은 서울 왕십리역 6번 출구 유흥가. 태어난 지 두 달된 내가 엄마를 잃고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쓰레기봉투 더미뿐이었다. 먹을 것은 보이지 않고 사람들의 무서운 발걸음 소리와 뜨거운 담배꽁초를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사람들은 나를 ‘길고양이’라 불렀다. 17일 밤이었다. 정신없이 걷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빛에 눈이 부시던 찰나 누군가가 나를 움켜잡는 손길을 느끼며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푹 자고 눈을 떠보니 나는 깨끗하게 씻겨진 채 푹신한 침대 위에 있었고 맛있는 연어 통조림도 곁에 있었다. 나를 잡았던 남자는 “이제 좋은 주인을 기다리자”고 말했다. ‘이냥이’라는 이름도 생겼다.

이냥이를 구한 은인은 한양대 서울캠퍼스 길고양이 돌봄 모임 ‘십시일냥’ 회원 박성한 씨(22)였다. 십시일냥은 ‘길고양이들이 적어도 배는 곯지 않게 하자’는 목표로 3월 결성됐다. 현재 회원은 44명. 회장 정민수 씨(27)는 2년 전 캠퍼스에 살던 길고양이 행냥이, 하냥이를 보고 고양이 보호에 관심을 가졌다. 학생들이 둘을 보며 즐거워하던 모습에서 길고양이도 캠퍼스의 일원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책과 인터넷 자료를 통해 고양이에 대해 공부한 뒤 지난해 말부터 모임 결성에 나서 올해 ‘실행’할 수 있었다.

한양대 일원에는 30여 마리의 길고양이가 산다. 십시일냥은 고양이 밥을 챙기는 것뿐만 아니라 길고양이가 유해동물 취급을 받지 않고 캠퍼스 생태계에 자리 잡도록 하고 있다. 독자적인 운영 구조도 갖췄다. 직접 캠퍼스를 누비며 만든 길고양이 위치 지도 ‘캣맵’과 다섯 곳의 급식소도 만들었다. 급식소는 1곳마다 2명이 관리한다. 길고양이 관리에 골치 아팠던 학교본부는 십시일냥 덕분에 고민을 덜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십시일냥의 핵심 기반이다. 박 씨 등 자취생 3명으로 구성된 ‘구조대’는 SNS로 24시간 신고를 받아 2개월간 길고양이 두 마리를 구했다. 십시일냥은 SNS를 통해 입양 희망자가 나타날 경우 심사를 해 고양이를 입양 보내기도 한다.

살림은 ‘십시일반’ 회비로 운영한다. 사료 값 대기도 빠듯하지만 공대생이 급식소를 만들고 디자인 전공 친구에게 홍보용 이미지 제작을 부탁하는 등 힘을 합쳐 꾸려가고 있다. 회원들은 SNS의 캠퍼스 길고양이 이야기에 놀이를 하듯 친구 이름을 태그하며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의류학과에 다니는 회원 송영희 씨(22·여)는 “십시일냥에 공감해 재능기부 하겠다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한 시민은 한양대생 조카가 SNS에 남긴 응원에 공감해 사료를 기부했다.

십시일냥은 이런 작은 움직임이 최근 사회 문제로 떠오른 동물권리 보호를 개선하는 데 보탬이 될 것이라 믿는다. 졸업 후 동물보호단체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정유빈 씨(21·여)는 “요즘 대학생들이 취업 스펙 쌓기 동아리에 몰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나는 버려진 고양이를 돌보며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는 게 즐겁다”며 밝게 웃었다.

회장 정 씨는 십시일냥을 잘 이끌기 위해 이번 학기 3과목 이수를 포기했다. “언론을 통해 폭력적인 동물 번식장에 대한 실상이 드러나며 시민들이 분노했고 동물권리 보호에 대한 관심도 올라갔습니다. 작은 생명 하나 보호하지 못하는 나라가 인권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요. 십시일냥은 길 위의 작은 생명도 우리 이웃이라는 메시지를 계속 전할 겁니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길냥이#한양대#길고양이#십시일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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