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이어진]남극 코리안루트 개척과 나의 선택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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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의사
이어진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의사
인생은 하나의 큰 은유다. 시간을 가로질러 박힌 점들은 어느새 서로 연결되어 기다란 이야기가 담긴 선이 된다. 무심히 놓인 선 끝에 봄꽃이 조용히 꽃망울을 머금었다. 척박한 땅에 처음 던져진 씨앗이 뿌리내린 아름다운 결과물이다.

많은 이들이 탐험을 한다. 몇몇 위대한 탐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태평양 망망대해를 작은 조각배 하나에 의지해 항해했던 폴리네시아인들의 이야기, 달 탐사와 화성 탐사를 향한 인류의 도전, 가장 높고 깊은 곳, 남극대륙과 남극점을 향한 집념의 이야기들은 영화의 한 장면이 되어 머릿속을 스친다.

현재 진행형인 이 탐험은 지금도 남극에서 계속되고 있다. 흰색 천에 수를 놓듯 1985년 남극 탐사를 시작으로 1988년 세종기지, 2014년 장보고기지로 이어지는 한 땀 한 땀 작은 도약들은 남극대륙 코리안루트(Korean route) 개척으로 진화했다. 거친 도전을 이어가며 그 과정에서 남극 얼음 밑에 있는 호수인 빙저호 연구나 빙하 코어 시추 연구, 우주환경 연구와 같은 독특한 연구도 수행할 수 있다.

세종기지부터 남극 코리안루트 개척 계획까지 30년, 남극이 준 이 강렬한 은유는 30세 청년의 인생 탐험 계획에 좋은 밑그림이 되었다. 나만의 인생 루트를 그려보기로 한다. 의사가 꼭 필요하지만 의사들이 없는 곳, 다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나의 효용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곳. 미래를 준비하는 곳,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제공하는 곳. 그런 곳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남극에서 하는 의학 연구는 우주 진출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 남극에서 월동(越冬)하는 과학자들의 신체 변화와 심리 연구는 특히 긴 호흡을 필요로 한다. 2048년 남극조약 만료 이후 변화될 수 있는 남극 관련 정책도 참고해야 한다.

생각을 뻗어가자, 꼬리를 물고 몇 가지 주제가 더 튀어나온다. 결핵이라는 질병은 미래 통일 한국의 가장 큰 보건의료 이슈이며, 긴급의료구호는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와 각종 재난에 대비해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중요하다. 법이나 경제를 잘 아는 의사도 필요하고, 미래 한국사회의 인구문제와 사회 통합을 위해서는 이주민 문제 또한 슬기롭게 준비해야 한다.

그렇게 몇 가지 기준과 주제가 정해지니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수많은 계산기가 사라지고 큰 엔진만 남았다. 직관을 존중하고 운명에 순응하는 가장 인간다운 실천, 미래로 가는 인생항로 우주선에 시동을 건다.

두 달여의 준비교육을 마친 지금, 남극 세종기지의 봄은 그리하여 대한결핵협회의 봄, 보건소의 봄을 거쳐 이곳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봄에 이르게 되었다. 내외국인 출입국 업무를 담당하는 전국의 출입국관리사무소 중에는 외국인 보호시설을 운영하는 곳이 있는데, 주로 불법체류 등의 이유로 단속된 외국인들이 일시적으로 입소한다. 보호 기간에 정신적, 신체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의 건강을 관련 절차가 끝날 때까지 돌보는 것이 내 임무다.

봄 소풍을 떠나는 아이처럼 설렌다. 하지만 출발선에 선 ‘신입’은 여러 가지 걱정도 많다. 문득 돌아보니 그간 헤아려온 수많은 선택지들과 가지 않은 길들이 수북하다. 탐험의 흔적, 설렘과 걱정, 희망과 두려움의 흔적이다. 이제는 거슬러 잡을 수 없지만, 금방이라도 만개할 것만 같은 젊은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화창한 봄날, 먼 곳에서 온 그들의 진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미래에 혹 우리가 남극에, 또는 화성에 이주하게 된다면 우리 스스로도 한 명의 이주민이 된다. 과거 우리 동포들 중에도 멀리 타국에서 고생했던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개척자들이 있었다. 비록 지금은 외국인이지만 미래의 국민이 될지도 모르는 이들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미래의 대한민국을 생각하며 남극대륙의 코리안루트 개척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다.

이어진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의사
#남극대륙#남극점#코리안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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