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명인열전]평범한 주부에서 ‘김치 전도사’로… “김치 홍보대사가 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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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안명자 전주김치문화연구소장

손맛 좋은 주부에서 김치 전문가로 변신한 안명자 씨는 ‘설명이 가능한 김치’,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김치’를 추구한다. 안 씨가 자신의 김치를 알리기 위해 문을 연 전주한옥마을 김치국밥집 신뱅이 뒷마당에서 김치를 담그고 있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손맛 좋은 주부에서 김치 전문가로 변신한 안명자 씨는 ‘설명이 가능한 김치’,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김치’를 추구한다. 안 씨가 자신의 김치를 알리기 위해 문을 연 전주한옥마을 김치국밥집 신뱅이 뒷마당에서 김치를 담그고 있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설명이 가능한 김치. 누구나 쉽게 따라 담글 수 있는 김치.”

손맛 좋은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김치 전도사, 김치 전문가로 인생 항로를 바꾼 안명자 씨(61·전주김치문화연구소장)가 추구하는 김치에 대한 철학이다.

많은 주부들이 맛있는 김치를 담그는 자신만의 재료나 양념 비법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이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눈대중으로 대충 넣는 양념과 흔히 손맛이라고 표현하는 비과학적 요소가 김치의 세계화와 과학화를 가로막는다고 생각한다. 좋은 재료를 더 많이 넣는다고 해서 더 좋은 김치가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다. 꼭 필요한 재료를 정확하게 계량해 넣어야 맛있는 김치가 된다고 그는 믿는다. 김치는 비법이 아니라 발효과학이기 때문이다.

○ 평범한 주부에서 김치 전문가로

1999년 6월 24일. 그녀가 남은 인생을 김치에 걸기로 결심한 날이다.

근동에 소문난 ‘솜씨쟁이’였던 친정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음식 솜씨에 미각만은 자신이 있었다. 집에 찾아오는 남편(전북대 미대 이철량 교수)의 제자나 지인들에게 밥상을 차려주면 한결같이 “김치가 맛있다”며 싸달라고 했다. 남편도 “무엇이든 10년만 하면 전문가가 된다. 김치가 각광받을 날이 반드시 온다”며 격려했다.

다음 날 새벽 5만 원을 들고 전주남부시장에 나가 배추와 양념을 샀다. 하루 종일 김치를 담가 지인들에게 배달했다. 평가는 냉정했다. 공짜로 얻어 갈 때는 그렇게 김치가 맛있다던 사람들이 ‘짜다’ ‘싱겁다’ ‘맵다’며 타박했다. 역시 돈 받고 파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고객의 기호에 맞춰 양념을 더하거나 소금을 덜 치지 않았다. 내 김치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만 사 먹으라는 자신감이었다. 한복을 입고 차로 직접 배달을 다녔다. 전국에서 주문이 밀려 들어왔다. 상표는 ‘신뱅이 김치’. 신뱅이는 가족이 1992년부터 이사해서 살던 모악산 아래 마을 이름이었다.

그에게 김치는 과학이고 문화이기 때문에 ‘왜?’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이 재료를 넣는지’ ‘왜 이 맛이 나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질문에 해답을 구하기 위해 2006년부터 2년 동안 전남과학대에서 김치를 전공했다. 오랜 고민의 결과물이 ‘안명자 김치 표준 레시피’다. 배추김치 갓김치 깍두기 등 가정에서 많이 먹는 10여 가지 김치를 주재료와 양념까지 정확히 계량화해 표로 만들었다. 배추 1포기, 열무 한 단, 설탕 한 큰 술이 아니라 배추 1kg, 설탕 1g으로 표준화한 것이다. 그에게 김치를 배운 사람들은 “김치 담그기가 참 쉬워졌다” “김치에 자신이 생겼다”고 입을 모은다.

2006년 김치에 대한 연구와 고민으로 골몰하다 ‘과일이 김치가 되다’는 주제로 과일김치를 발표했다. 사과 배 감 파인애플 등으로 만든 과일김치는 맛과 영양이 풍부할 뿐 아니라 김치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고 김치의 영역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당시 김치에 대한 이미지는 바닥이었다. ‘중금속 김치’ ‘기생충 김치’가 나오면서 김치에 대한 인식이 땅에 떨어진 시점이었다. 김치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달콤하고 상큼한 이미지의 과일을 부재료에서 주재료로 끌어들이자는 데 생각이 미쳤다. 파인애플을 마요네즈에 버무리면 오래 보관할 수 없지만 김치로 담그니 저장성도 좋아지고 먹을 만했다. ‘채소를 소금에 절여 고춧가루 젓갈 마늘 등 양념에 버무려 저온에서 숙성한 것’이라는 김치의 본래 속성을 잃지 않으면서 재료의 변화를 추구한 것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일본에서 김치 사업을 같이 하자며 모악산 자락까지 찾아왔다. 이는 곧 일본에서의 김치축제와 본격적인 활동으로 이어졌다. 그는 2008년부터 매년 11월에 일본 사이타마(埼玉) 현 히다카(日高) 시 고마(高麗)신사에서 김치축제를 열고 있다.

이곳은 1300여 년 전 일본에 건너온 고구려 유민들이 건립한 신사다. 축제에서는 해마다 일본 전역에서 온 150여 명의 일본인이 안 씨로부터 김치를 배운다. 그의 김치교실 회원 200여 명은 자발적으로 ‘일한 식문화연구회’를 만들어 활동 중이다.

○김치 알리기 세계 일주가 꿈

그는 2009년 자신의 김치를 알리기 위해 전주한옥마을에 식당을 열었다. 콩나물국밥과 백김치국밥과 비빔밥, 김치전이 메뉴의 전부다. 반찬도 딱 김치 3가지만 준다. 가게 벽에는 도로시 호프만이라는 독일 여교수가 한글로 써 놓은 글이 눈길을 끈다. “저는 원래 김치를 싫어했던 독일 사람인데 여기서 먹고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옛날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에요.”

그는 백김치와 콩나물국밥, 김치 제조용 풀, 비빔밥 소스에 대해 특허를 받았다. 2013년에는 ‘김치는 나의 혼, 우리의 문화’(이룸나무)라는 책도 펴냈다.

그녀는 5명뿐인 대한민국 전통식품명인 김치 부문에 도전하고 있다. 맛의 고장 전주에서 김치 명인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녀는 국제한식조리학교와 전라도김치아카데미, 광주김치아카데미 등에서 수년째 김치를 강의해 왔다. 주한 외교사절과 각급 학교에서도 김치 수업을 요청하면 한걸음에 달려간다. 아이들부터 김치 맛에 길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집마다 다른 김치 레시피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싶다. 이 집 김치는 왜 이 맛이 나는지를 정확히 규명해 누구나 같은 재료로 같은 방식으로 담그면 같은 맛이 나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치 사업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평소 존경하던 한 지인으로부터 ‘그까짓 김치 좀 한다고 요란 떨지 말고 남편 얼굴에 먹칠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분의 충고는 내 가슴에 대못을 박았지만 김치에 더 매달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의 마지막 꿈은 김치 홍보대사로 세계를 일주하며 세계인들에게 김치를 가르치는 것이다. 김치에 대한 그의 열정으로 볼 때 그 꿈이 실현될 날도 그리 머지않아 보인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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