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공지능도 비웃을 ‘엉성’ 온라인 학술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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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초만에 AI로 만든 가짜논문 통과… “99달러만 내면 등재” 교수들 유혹

기자가 컴퓨터 사이언스 관련 가짜 논문을 학술지에 등재하는 건 눈을 의심할 만큼 쉬웠다. 미국 대학원생들이 만든 초급 인공지능(AI) 기반의 자동 논문 생성 프로그램 ‘SCIgen’을 이용해 논문을 만드는 데 3초, 중국 기반의 온라인 학술지 ‘OALib’ 통과까지는 겨우 2주가 걸렸다. 학술지에 논문이 통과되려면 최소 6개월 이상 걸린다. 가짜 논문이 온라인 학술지를 쉽게 통과할 수 있다는 사실이 국내에서 공개된 건 처음이다.

OALib는 학술지가 거치는 여러 검증 과정을 무시했다. 기자가 논문에 재직 중인 학교로 기재한 곳은 ‘동아 미디어 칼리지’. 존재하지 않는 학교다. 학술지는 저자가 제출한 논문이 혹시 자기 표절된 게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학교와 저자 검증을 해야 하는데 전혀 하지 않았다. 문제는 일부 교수들이 이런 엉터리 온라인 학술지에 논문을 등재하고 이를 자기 성과로 학교에 제출한다는 것.

3일 오전 9시 기자는 SCIgen에 ‘Yena Choi’라고 저자 이름만 쳐 넣었다. 그러자 PDF로 된 그럴싸한 6쪽짜리 영어 논문이 나왔다. 논문 주제는 SCIgen이 알아서 선정했고, 도식·그래프 5개와 참고문헌 23개도 포함됐다. 기자는 이것을 보통의 논문 제출 형식인 MS 워드로 바꾸고 재직 학교명과 주소, 전공만 명시해 OALib에 제출했다. OALib는 쉽게 논문을 통과시켰다. “등재하려면 99달러만 내라”는 요구와 함께.

▼ 가짜 저자 가짜 대학 가짜 논문에도 “통과”
허술한 온라인 학술지 실태

신문방송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기자가 가짜 컴퓨터 관련 논문을 만들어 온라인 학술지에 제출해 봐야겠다고 결심한 건 한 교수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배영찬 한양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일부 온라인 학술지들이 “돈만 내면 논문을 등재해 준다”며 교수들을 유혹한다는 최근 본보의 보도 이후 동료 교수들로부터 “쉬쉬했을 뿐 가짜 논문이 학술지에 등재되는 것 다 알고 있지 않느냐”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배 교수도 “들어보지도 못한 온라인 학술지로부터 ‘돈만 내면 논문을 등재할 수 있다’는 e메일을 매일 다섯 통도 넘게 받는다”고 했다.

기자가 이용한 자동 논문 생성 프로그램 SCIgen은 2005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컴퓨터 사이언스 전공 대학원생 셋이 재미 삼아 개발했다. 무료다. 개발자들은 “SCIgen을 통해 엉터리 학술지의 낮은 통과 기준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개발자들은 SCIgen을 통해 만든 논문 2편을 사이버 분야의 저명한 학술대회인 WMSCI에 제출해 한 편이 통과됐다고 밝혔다. 그 외 7편도 세계적인 학술대회인 전기전자공학회(IEEE)나 온라인 학술지를 통과했다.

SCIgen은 초급 수준의 인공지능이다. 기자가 3초 만에 얻은 논문 제목은 ‘의사 랜덤 원형을 이용한 전문가 시스템 시각화’. 제목은 무슨 뜻인지 난해했지만 형식은 완벽해 보였다. ‘요약, 서론, 이론적 배경, 연구 방법, 연구 결과, 결론, 참고문헌’으로 이어지는 논문 형식을 전부 갖췄다. 한양대 내부의 표절검사 시스템이 잡아낸 표절률은 5%. 학계에서 표절이라고 보지 않는 수치다. 법적 문제를 우려해서인지 SCIgen이 인용하는 참고문헌은 모두 가짜로 확인됐다.

기자는 등재를 유혹하는 e메일을 교수들에게 자주 보낸다는 컴퓨터 사이언스 분야의 온라인 학술지 8곳(인도 중국 각 3곳, 미국 유럽 각 1곳)에 논문을 제출했다. 2주 만에, 제일 먼저 논문 통과 소식을 알려온 곳이 OALib였다.

OALib가 바로 요구한 등재 비용은 99달러(약 11만 원). 보통 이공계 학술지는 등재 비용을 받지 않는다. 해당 학술지가 판권을 갖고 다른 연구자들이 해당 논문을 볼 때 돈을 받기 때문이다.

학계는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일부 교수들이 이런 식으로 자격 미달인 온라인 학술지에 논문을 등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매년 학교로부터 승진 및 성과 평가 명목으로 논문 실적을 요구받아서다. 보통 사립대는 교수에게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에 논문을 등재하면 6점, 그 외 해외 학술지나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에 등재하면 3점을 준다. 서울의 A대 교수는 “20만 원 정도만 내고 허술한 학술지에 2편을 등재하면 SCI급 등재와 같은 점수를 받는다”고 지적했다.

등재 건수만 강조하고 논문의 질과 등재 형식은 따지지 않는 풍토가 가장 큰 문제다. 대학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연구 실적을 요구하는 형식적 평가지표가 그런 분위기를 만들었다. 등재 논문을 대학 내에서 평가한다고 하지만 학술지의 진위나 논문 내용을 제대로 검증하진 않는다. 또 동료 교수가 평가하는 경우도 많아 혹 문제점을 알아채도 그냥 지나치기도 한다. 배 교수는 “연구 여건이 안 되고 학생 취업에 더 신경 써야 하는 지방대까지 똑같이 논문 실적을 요구하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온라인 학술지가 대입 수시 특기자 전형에서 악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배 교수는 “외국 학술지에 등재했다며 논문을 제출하는 학생이 많은데 본인이나 사교육기관이 온라인 학술지의 허술함을 이용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온라인#학술지#가짜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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