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22년만에 이혼 소송한 남편…법원 “축출이혼 안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3일 16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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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파탄의 원인을 제공한 유책(有責) 배우자의 ‘축출 이혼’은 허락할 수 없다는 서울가정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15일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할 것인지를 놓고 대법원의 최종 선고가 나올 예정인 가운데 하급심이 현행 유책주의를 고수하는 판결을 내려 주목된다.

대학교에서 만난 A 씨(여)와 B 씨(남)는 1985년 혼인신고를 했다. 가정환경이 불우한 A 씨와의 결혼을 반대했던 시아버지는 A 씨가 두 자녀를 출산하자 자신의 명의로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해 아들 가족을 살게 했다. 그러나 B 씨는 시부모와의 갈등 속에 살던 A 씨를 두고 가출해 수년 뒤 다른 여성을 만나 아이 둘을 낳았다. B 씨가 가출한 사이 병에 걸린 시부모를 간병한 A 씨는 시부모에게 인정받아 생활비 일부를 받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자 B 씨는 가출 22년 만에 A 씨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냈다. 아버지 사망 후에는 상속권을 행사해 A 씨와 아이들이 살고 있는 아버지 명의의 아파트를 자신과 동생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하고 경매에 넘겼다. 아버지가 A 씨에게 사준 아버지 명의의 오래된 자동차까지 견인해갔다.

그러나 법원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남편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가정법원 가사1부(수석부장판사 민유숙)는 “B 씨가 무단가출해 가정을 돌보지 않고 혼외자를 낳았으며, 아버지 없이 성년에 이른 두 자녀에게 별다른 죄책감 없이 20년 이상 살아온 아파트에서 나가라고 하는 등 배우자로서 부양의무, 성실의무를 저버렸다”며 이혼 청구를 기각했다.

B 씨는 선진국에서도 유책행위와 별개로 혼인관계가 파탄나면 이혼을 인정하는 파탄주의 추세에 있다며 별거한 사정을 고려해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B 씨의 태도로 미뤄볼 때 이혼 청구가 인용되면 A 씨는 대책 없이 ‘축출 이혼’을 당해 참기 어려운 경제적 곤궁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며 “A 씨와 자녀들이 정신적·사회적·경제적으로 가혹한 상태에 놓여 이혼청구 인용은 사회정의에 반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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