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사관 공지, 독극물 비 조심”… 행정기관 도용 SNS괴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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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진 독극물 한국전파 가능성 제로”… 전문가 진단에도 불안 조장 글 기승
‘긴급 연락’이라며 공유 부추기기도… 확인 안된 정보 퍼나르기 자제해야

중국 톈진 시에서 일어난 폭발사고 이후 주중 미국대사관(위쪽)과 소방기관(아래쪽)을 출처로 내세우며 인터넷상에서 위험성을 경고한 
글들. 하지만 정부 당국은 17일 이 사고 때문에 국내에 오염물질이 유입될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인터넷 캡처
중국 톈진 시에서 일어난 폭발사고 이후 주중 미국대사관(위쪽)과 소방기관(아래쪽)을 출처로 내세우며 인터넷상에서 위험성을 경고한 글들. 하지만 정부 당국은 17일 이 사고 때문에 국내에 오염물질이 유입될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인터넷 캡처
‘긴급! 중국 폭발 사고 관련 당분간 비는 꼭 조심하시길….’

12일 중국 톈진(天津) 시 탕구(塘沽) 항에서 대형 폭발 사고가 난 뒤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급격히 퍼진 글의 일부다. 700t가량이나 사라진 독극물 시안화나트륨 때문에 비를 맞으면 안 되고 비에 맞은 뒤에는 옷과 몸을 잘 씻으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얼핏 보면 각자의 안전을 지키도록 돕는 정보 글이다.

하지만 전문가 의견은 완전히 다르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잘못된 정보가 오히려 불안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시안화나트륨은 폭발을 일으키거나 공기 중으로 퍼지지 않고 주변의 물과 토양만 오염시킬 뿐”이라며 “공기 중으로 전파될 수 있는 다른 화학물질 오염 역시 피해 우려 지역은 주변 수십 km에 불과해 한국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말했다. 환경부도 17일 “오염물질의 국내 유입 가능성이 없다”고 밝혔다.

이번 사례처럼 SNS 등에서 부정확한 정보성 글이 확산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주변에 유용한 정보를 전하겠다는 좋은 마음으로 글을 퍼 나르다가 그릇된 사실을 알리는 ‘양치기 소년’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금융 범죄가 늘어나는 요즘 “‘주차된 차 빼라’며 욕설과 함께 전송된 문자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가 25만 원이 결제되는 피해를 봤으니 조심하라”라고 알리는 글도 마찬가지다. 경찰 관계자는 “전화를 거는 것만으로 사이버 금융 범죄 피해를 본 사례는 아직 확인된 적 없다”고 밝혔다.

이런 글들은 공공기관을 정보 출처로 내세우면서 급격히 퍼져 나가기도 한다. 각종 교통 범칙금이 2배로 오른다며 지난해와 올해 인터넷에서 돌았던 글은 경찰 상징물까지 담긴 채 빠르게 확산됐다. 경찰청이 나서서 “노인·장애인 보호구역 안에서 법규를 어겼을 때만 해당되는 내용”이라고 밝혔지만 이 글은 지금도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톈진 사고 관련 글에도 주중 미국대사관이 위험성을 경고했다는 내용이 덧붙어 있지만 외교 당국 등은 미국 측이 이런 공지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비슷한 글이 119안전센터 등에 전파됐다고 알려지기도 했지만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17일 “그런 글을 내려보낸 바 없으며 내용도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고 밝혔다.

사실과 거짓이 교묘하게 섞인 글도 있다.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을 때 비용이 들 수 있는 보험사 견인차 대신 도로공사 견인차를 이용하라는 글은 ‘돈 되는 정보’라며 최근 큰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도로공사 견인차 역시 휴게소 같은 안전지대까지만 차를 옮겨 주고 그 후엔 비용을 내야 한다. 또 이 긴급 견인은 도로공사와 계약을 맺은 일반 견인차가 진행하기 때문에 글에 묘사된 ‘패트롤 차 딸린 도로공사 소속 견인차’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검증 안 된 정보가 무분별하게 유통되는 상황을 바로잡으려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경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정보통신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이용자들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고 또 관련된 문화가 올바로 뿌리내리지 못하면서 빚어지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미국대사관#공지#독극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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