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통 응급실’ 감염 무방비… 환자 체류시간 英의 6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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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메르스를 막아라]<4>病 얻어오는 응급실

“덩치만 부풀린 한국 병원의 외화내빈(外華內貧)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국내 한 예방의학 분야 권위자는 이번 한국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고가 수술 장비, 화려한 병동 등을 갖추며 현대식 병원으로 진화해왔지만 감염병의 ‘병원 내 전파’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해 버린 것이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병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응급실에 방문했던 환자들이 ‘메르스’라는 병에 걸려 돌아왔기 때문이다.

시장통처럼 북적거리는 응급실, 빡빡한 다(多)인실 병동, 반입금지 물품을 들고 병문안하러 오는 가족들…. 그동안 병원 위생을 위협한다며 지적돼 온 이 고질적인 문제를 고치지 않는다면 ‘제2의 메르스 사태’에 또다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 응급실 체류시간 선진국 6배 이상

응급실은 급히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임시로 들르는 공간으로 다양한 환자가 모이다 보니 감염에 취약한 편이다. 한국의 응급실 재실시간은 최고 37.3시간. 최대 6시간을 넘기지 않는 영국과 비교해보면 6배 이상으로 높은 수치다. 2014년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응급실 수용가능 인원을 초과해 환자를 받는 병원은 국내 대형병원 10곳이었다.

서동우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한국의 응급실은 감염병 예방 측면에서 최악의 상태”라고 말했다. 환자가 몰리다 보니 간이침대나 의자, 바닥에서 대기하는 환자가 있고, 이 과정에서 환자나 보호자가 다른 전염병에 노출될 위험성이 큰 편이다.

응급실 구조가 후진적인 것도 문제다. 미국 등 선진국은 응급실이 대부분 1인 1실로 되어 있다. 개별 응급실 일부엔 음압시설이 설치돼 있어 호흡기 질환자를 다룰 때도 효과적인데, 한국의 병원은 아직 이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응급실을 개편할 경우, 국내 각 병원의 응급실 병상 수가 반 토막이 날 수밖에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예를 들어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리모델링을 하면 침상은 70개에서 40개 정도로 줄어든다. 천 칸막이로 침상을 구분하는 것이 아닌 개별 병실 형태로 바꾸면 병상이 들어갈 공간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 ‘응급실 러시’ 없애는 3가지 대안

응급실 과밀 문제를 해결하려면 ‘비(非)응급환자’를 수용할 병동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암 등 중증 질환자, 기타 경증 환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을 제외하면 과밀현상이 나타날 정도로 환자가 몰리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한 대형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암 환자를 위한 ‘포스트 트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형병원 응급실에 있는 노인 환자 중 상당수가 말기 암 환자다. 대형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 재발해 병원을 찾았으나, 병실이 없어 며칠씩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이 교수는 “대형병원들이 신규 암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암센터를 크게 짓고 화려하게 꾸미지만 사후 조치는 빈약한 편”이라며 “수술 받은 환자를 지속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병상을 마련해 내실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응급실 방문자를 병세에 따라 구분해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신상도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일본의 경우 24시간 응급외래를 운영하면서 중증 구역과 경증 구역을 나눠 진료를 진행한다”며 “중증 외래 구역에는 구급차로 실려 온 환자만 입실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일반 외래처럼 밖에서 대기하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증상에 따라 환자를 각기 다른 구역에 배치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적어도 응급실에 오는 환자는 내과계·외과계·외상 환자 등으로 분류해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게 해야 한다. 특히 호흡기계 질환은 격리해 따로 진료를 해야 추가 감염을 막을 수 있다. 또 경증 질환인 경우엔 대형병원 응급실을 이용하기보다는 중소병원의 응급실을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시스템 마련도 필요하다.

○ 내무반식 병실 문화도 문제

한국 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이비인후과 전문의로 일하고 있는 조대연 앨라배마대 (UAB) 조교수는 “6인실 시스템은 한국의 싼 의료보험수가를 지탱하기 위한 병실제도인데, 바로 전염병의 온상”이라며 “커튼 하나로 공간을 분리하고 있는 다인실에서 호흡기 질환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6인실을 찾아보기 힘들다. 당일 퇴원이 가능한 4인실 병실이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2인실 또는 1인실로 이뤄져 있다.

1인실에 비해 다인실 가격이 싸다 보니 자리가 날 때까지 응급실에 대기하는 환자가 있을 정도로 다인실의 인기가 좋은 편이다. 정부도 이런 수요에 맞춰 올해 9월부터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의 다인실(6인실) 의무 확보비율을 50%에서 70%로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조 교수는 “1, 2인실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다인실을 줄이는 방향으로 지원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아픈 사람을 찾아가 위로하는 ‘병문안’에 대한 인식도 바꿔야 한다. 아픔을 공유하는 태도는 미덕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수칙들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이중의 삼성서울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모두의 안전을 위해 병원이 면회 시간, 방문객 규모 등을 제한하는 것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며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꽃, 외부 배달음식을 반입하는 행위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연 sykim@donga.com·천호성 기자
#응급실#감염#메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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