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문닫을 판에… 저리대출 대신 세금이나 깎아달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메르스 어디까지]
민생 현장에선

“결국 돈을 빌려 쓰라는 건데, 가게가 문 닫을 상황에서 어떻게 대출을 받겠습니까.”

서울 중구 명동에서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 씨(62)는 19일 분통을 터뜨렸다. 현실과 동떨어진 정부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대책 탓이다. 메르스로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최근 김 씨 가게의 매출액은 지난달의 30% 수준으로 떨어졌다. 임차료와 인건비 등 고정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하루하루 간신히 버티는 실정이다. 김 씨는 “결국 정부가 세금으로 생색내는 것 아니냐. 차라리 저리 융자보다 세금 감면 같은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메르스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과 관련 업계를 지원하기 위해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의 ‘체감온도’는 싸늘하다.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상인 A 씨는 “긴급 금융 지원을 한다지만 아직 구체적인 대상과 선정 방법을 몰라 답답하다”고 말했다. 서울시 최저 1.9%, 중소기업청 2.6%, 새마을금고 4.15%(1355개 금고 평균), 관광진흥개발기금 1.5% 등 지원 주체에 따라 금리도 제각각이다. 상인들도 헷갈릴 정도다.

그나마 서울 대형 시장은 사정이 낫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영세 상인들에겐 이런 정책마저 먼 나라 이야기다. 메르스 환자가 잠복기 때 다녀간 것으로 알려진 부산의 한 식당은 매출이 평소의 10%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 식당 주인은 “도움이 절실한 건 맞는데 무엇을 어떻게 도와 달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관광업계는 메르스 충격의 피해가 가장 크다. 이달 17일까지 해외 337개 여행사를 통해 한국에 오려던 12만1524명이 일정을 취소하면서 약 2146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소규모 여행사들은 시름이 깊다. 수학여행과 단체 여행 상품을 판매하는 광주의 한 여행사 대표 B 씨는 “오늘 마지막 남은 예약마저 취소되면서 이제 남은 예약이 단 한 건도 없다”며 “지난해 세월호 사고 때는 수학여행은 취소돼도 단체 여행은 일부 남았는데 올해는 말 그대로 ‘전멸’”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정부에 대한 불신은 분노로 이어지고 있다. B 씨는 “정부가 메르스에 대해 정확히 알리고 국민이 안심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이미 다 망하고 나서 대출해 준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업계에서는 실질적인 대책을 주문하고 있다. 관광업계 관계자 C 씨는 “관광진흥개발기금과 같은 여행사들에 대한 융자 프로그램을 거치 기간을 연장하거나 대출 조건을 완화하는 등 좀 더 유연하게 운영해 달라”고 말했다.

‘찔끔 지원’ 같은 대책보다 메르스에 대한 오해와 국민적 불안감을 해소시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소기업청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들은 정부가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할 사항으로 ‘메르스 확산 차단에 역량 집중’(75.4%)을 꼽았다. 이어 ‘메르스 관련 괴담 차단 등에 대한 정부 차원의 국민 불안감 해소’(66%)를 요구했다. 이번 조사는 9∼13일 전국 2000여 개 중소기업·소상공인 및 전통시장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송귀동 부산 해운대구 좌동 재래시장상인회장은 “우리 지역이 메르스 전염 우려가 없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해 주는 게 가장 절실한 지원”이라고 강조했다.

우경임 woohaha@donga.com·한우신 / 부산=강성명 기자
#메르스#세금#민생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