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新명인열전]“제가 만든 공으로 타수 줄였다는 말 들었을때 가장 기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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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에이스골프’ 김영준 대표

《 두 번째 샷이 홀 가까이에 붙었다. 3m 남짓한 버디 퍼트. 브레이크가 전혀 없는 평지라 쉽게 버디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똑바로 친 볼은 홀을 살짝 비켜 갔다. 아쉬움의 탄성이 터져 나온다. 아마추어 골퍼는 이럴 때 퍼트 연습을 게을리한 탓이라고 자책하기 마련이다. 13년 구력에 ‘핸디 18’로 ‘보기 플레이어’인 김영준 씨(45)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혹시 퍼팅 스트로크가 아닌 골프공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골프공을 직접 잘라 보고 외국 전문 서적을 뒤져 가며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골프공의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됐다. 김 씨가 ‘에이스골프’라는 벤처회사를 차리고 경쟁이 치열한 골프공 시장에 뛰어든 이유다. 》


호남대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한 에이스골프 김영준 대표가 자체 개발한 골프공을 설명하고 있다. 김 대표는 “골프공으로 인한 오류를 없애주는 것이 우리의 비즈니스”라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호남대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한 에이스골프 김영준 대표가 자체 개발한 골프공을 설명하고 있다. 김 대표는 “골프공으로 인한 오류를 없애주는 것이 우리의 비즈니스”라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 골프와 닮은 ‘롤러코스터 인생’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김 대표는 중학교 2학년 때 자퇴했다. 4남 3녀 중 막내인 그는 같은 반 친구가 승려가 되겠다며 학교를 그만두자 그를 따라나섰다가 ‘출가(出家)’가 아닌 ‘가출(家出)’을 했다. 무작정 상경해 수세미 고무장갑 등 생활용품을 들고 팔러 다니다 가구 제조업체에 취직했다. 안정적인 수입이 생기자 다시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2년 만에 독학으로 중고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손재주가 좋은 그는 군 제대 후 컴퓨터 수리 판매업을 하다 휴대전화 유통 업자로 변신했다. 1997년까지만 해도 그는 광주에서 최고 매출을 올리는 휴대전화 대리점 사장이었다. 하지만 거래처를 잘못 만나 사기를 당하면서 하루아침에 금융채무불이행자로 전락했다. 그렇게 1년을 방황하다 광고업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2001년 일명 ‘풍선 간판’을 개발하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재기에 성공하고 내친김에 중국으로 진출하려다 또 한번 좌절을 맛봤다. 현지 시장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섣불리 덤벼든 탓이었다. 이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를 오가며 무역업을 했지만 손해만 보고 2013년 사업을 접었다.

그러던 중 중고 골프공 시장이 눈에 들어왔다. 해외에서는 골프공을 재활용해 사용하는 게 보편화돼 있는데 국내는 그렇지 않았다.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중고 골프공을 수거하고 판매하는 업체를 만들었다. 그는 2년 전 골프공을 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하루에 4000∼5000개를 만지는데 자세히 보니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절단기로 골프공을 잘라 보니 안에 들어 있는 고무의 두께가 일정하지 않았다. ‘두께가 다르면 공이 상하좌우 중심이 잡히지 않을 것이고 굴러가다 어느 순간 한쪽으로 휘지 않을까.’

국내 서적을 뒤져 봤지만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세계 최대 인터넷 쇼핑물인 아마존을 검색하다 세계적인 골프 교습가인 데이브 펠츠가 쓴 ‘프로처럼 퍼팅하기’란 책을 봤다. 펠츠는 이 책에서 “골프공이 당신을 바보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하며 골프공의 오류를 경고했다. 뒤틀어진 무게중심으로 드라이버샷과 퍼팅을 할 때 공이 무거운 방향으로 휘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무릎을 쳤다. 그럼 내가 무게중심이 완벽한 골프공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에이스골프의 출발이었다.

“내 인생은 골프와 많이 닮은 것 같아요. 홀인원을 한 것처럼 잘나가다가 오비(Out of Bounce)를 내고 해저드나 벙커에 빠져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김 대표는 “고달픈 인생이었지만 배운 게 많았다”며 웃었다.

○기술력 인정받아 세계시장 공략

골퍼 중에는 골프공 위에 새겨진 퍼팅라인(에임마크)을 참조해 샷하는 사람이 많다. 퍼팅라인이 골프공의 무게중심 등 밸런스를 확인해 인쇄된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 골프공의 99%는 무게중심과 형태 밸런스에 상관없이 무작위로 퍼팅라인이 새겨져 있다. 김 대표는 “모든 골프공은 두 개 이상의 금형을 맞물려 제조하고 접합 부위를 완벽하게 마감하기 어렵기 때문에 완전한 구체가 아니다. 그래서 아무리 똑바로 쳐도 공은 휘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2년여의 연구 끝에 무게중심과 형태 밸런스를 최적화한 ‘디스커버리 Ⅲ’라는 골프공을 만들었다. 중력을 이용해 무게중심선을 확인하고 무게중심선과 각 골프공에 있는 접합 부분이 수직으로 교차하는 부분에 퍼팅라인을 인쇄했다. 기술력도 인정받았다. 지난해 미국골프협회(USGA)와 영국왕립골프협회(R&A) 정식 공인구로 등록됐다. 듀얼 밸런스 기술로 6건의 특허를 받았고 7건은 출원 중이다. 지난해 9월 첫 출시 이후 지금까지 10만 개를 팔았다. 그동안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하다 최근 광주 평동산단에 공장을 설립하고 자체 생산에 나섰다. 연간 720만 개를 생산해 1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게 목표다.

호남대 골프산업학과 4학년인 그는 이 대학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디자인 개발과 특허 출원, 마케팅 등 현장 밀착형 멘토링 시스템을 통해 에이스골프는 스타 기업이 됐다.

그는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세”라며 “스윙 궤도나 얼라인먼트(정렬)가 잘못되면 아무리 무게중심이 잡힌 골프공이라도 똑바로 보낼 수 없다”고 말했다.

“제가 개발한 공으로 타수를 줄였다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보람 있죠. 이제 국내 시장을 넘어 전 세계에 진출해 한국의 브랜드 파워를 알리고 싶습니다.” 산전수전을 겪은 40대 벤처사업가의 야무진 꿈이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골프공#에이스골프#김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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