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구한말 日포격에 침몰된 英상선 ‘고승호’를 아시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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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 진압 나선 淸軍1200명… 日 급습 받아 인천 앞바다서 몰살
2001년 민간업체가 수중 발굴 나서… 총기류-도자기 등 2000여점 출토
인천시립박물관 14년만에 공개

27일 처음 공개된 고승호에서 인양된 유물들.
27일 처음 공개된 고승호에서 인양된 유물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던 1894년 7월 25일 인천 옹진군 울도 인근 해상에서 일본 전함의 무차별 포격으로 영국 국적의 상선 고승호(高陞號)가 침몰했다. 청일전쟁의 서막인 ‘풍도해전’ 현장에서 순식간에 격침된 고승호는 120년 넘게 바다 밑 갯벌 속에 잠겨 있다.

청나라가 급히 군인 수송선으로 활용하기 위해 임차한 이 상선엔 청군(淸軍) 1200명가량이 타고 있었다. 중국 톈진(天津)항을 떠나 동학 농민을 진압하기 위해 충남 아산으로 향하던 중 한반도 주도권 확보에 혈안이 돼있던 일본의 급습을 받아 청군 대부분이 몰살됐던 것.

보물선으로 알려진 이 배를 탐사해 오던 한 민간 업체가 2001년 수중 발굴 작업을 통해 선내에 실려 있던 2000여 점의 유물을 찾아냈다. 인천시립박물관이 14년간 수장고에 위탁 보관해 오던 유물들을 27일 처음 공개했다. 7월 19일까지 ‘고승호-끝나지 않은 항해’라는 이름의 기획특별전을 마련한 것. 이후 8월 4일∼10월 4일 전남 목포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로 옮겨 순회 전시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1894년 청일전쟁의 서막을 올린 인천 옹진군 울도 인근의 풍도해전에서 일본 전함 공격을 받은 고승호의 침몰 장면. 당시 일본 해군이 촬영했고, 침몰화도 그려 승전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인천시립박물관 제공
1894년 청일전쟁의 서막을 올린 인천 옹진군 울도 인근의 풍도해전에서 일본 전함 공격을 받은 고승호의 침몰 장면. 당시 일본 해군이 촬영했고, 침몰화도 그려 승전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인천시립박물관 제공
근대 개항지인 인천에선 열강들의 다툼으로 치열한 전투가 수없이 벌어졌다. 1866년 병인양요, 1871년 신미양요, 1875년 운요호사건(을해왜요),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등이 대표적이다.

이어 인천은 남북한 격전지로 떠오른다. 6·25전쟁의 분수령이었던 1950년 인천상륙작전, 1999년 1차 연평해전, 2002년 2차 연평해전, 2009년 대청해전, 2010년 백령도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도발이 빚어졌다.

인천이 제국주의 전쟁과 남북 분쟁의 주무대였지만, 이런 뼈아픈 기억들은 뇌리에서 사라진 채 역사의 교훈으로 삼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조우성 인천시립박물관장은 “많은 사람들이 고승호의 이름조차 생소해한다. 열강들이 서로 싸우도록 힘없이 국내 땅을 내준 이유를 찾고 반성할 수 있는 역사 현장을 기리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고승호는 영국 배로 조선회사에 의해 건조된 3층 높이의 증기선이었다. 영국과 중국 간 교역을 담당하던 상선이었기 때문에 은괴 등 귀중품을 실은 보물선이란 소문이 퍼져 1920년대부터 인양이 수차례 시도됐었다.

그러나 침몰 위치를 정확히 몰라 실패를 거듭하다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운영하던 대아실업 투자사인 ‘골드쉽’이 2001년 발굴에 성공했다. 인양 유물들은 총기류, 탄알, 점화장치, 쌍안경, 선박용 온도계 및 전등, 칼(청룡도, 반월도), 군인 가죽신발, 도자기류, 철종, 엽전 등이다. 그러나 3차 수중 발굴 도중 이 회사의 부도로 유물들은 시립박물관의 소유물 형태로 위탁 관리돼 왔다.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장은 “고승호를 통해 볼 때 120여 년 전 청일전쟁 상황이 과연 종료됐는지 의문이 든다. 조선이 강대국 틈바구니 속에서 제대로 대응을 못했는데, 요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논란 등으로 혼란스러운 동아시아 정세도 과거 역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고 말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고승호 유물 발굴 재개 및 선체 인양 작업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풍도 ::

경기 안산시 관할, 울도는 인천 옹진군 관할 구역. 고승호가 침몰된 뒤 수장돼 있는 지점은 울도 해역이지만 전투 시발지점은 풍도 주변이어서 ‘풍도해전’으로 불림.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고승호#동학농민#인천시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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