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박병하의 수학 다르게 보기, 제대로 보기]짧은 막대로 건물 높이를 잴 수 있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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뺄셈이 ‘거꾸로 덧셈’이듯 나눗셈은 ‘거꾸로 곱셈’

어느 가을 저녁. 지혜로운 삶에 대하여 듣는 강연회 자리. 좋은 말씀이 강연장을 따듯하게 데우고 청중들은 멋진 강연에 흠뻑 젖어 있었다. 나도 그랬다. 그때, 이 말이 들리기 전까지는. “8에서 4를 나눈다는 것은 빵 8개를 4명에게 나눠주기이죠. 한 사람이 2개씩 받습니다. 그러니까 8 나누기 4는 2가 맞아요. 2 나누기 4도 빵 2개를 4명에게 나눠 주기로 생각하면 되니까 한 사람이 반씩, 그래서 1/2이 맞습니다.”

● ‘8 나누기 4’는 빵 8개를 4명에게 나눠주기?

그 때부터 내 마음은 조마조마하였다. 강연자는 존경 받는 분이고 나도 그 분을 존경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수학이지 않은가.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데 1/2÷2/3 이건 뭐지요? 학교에서는 무턱대고 2/3의 역수 3/2을 곱하라고 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람 2/3명이 어디 있습니까? 말이 안 됩니다. 수학은 현실과 너무 떨어져 있어요.”

맙소사, 예감이 맞아 버리다니. 거기서 수학 이야기는 끝나고 좋은 말씀이 이어졌지만 나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내 머리 속이 너무 빠르게 움직여 속이 울렁대더니 딸꾹질까지 났던 것이다. 가만히 일어나 조심스레 밖으로 나왔다.

●나눗셈, 다르게 보기

가을바람이 시원했다. 소걸음으로 걸으며 생각을 시작했다. 그렇다. 8÷4는 2이다. 맞다. 그러나 그것이 꼭 빵 8개를 4명에게 나눠주기여야 하나. 아니다. 정확하게 따지면 8÷4는 8에서 4를 몇 번 빼는가, 바로 그 문제다. 8에서 4를 2번 빼서 0이니까 8÷4=2라고 하는 것이다. 다르게 쓰면 8-4-4=0. 그런데 보자, 8-4-4=0의 양쪽에 4를 더하면 8-4=4이고, 한 번 더 더하면 8=4+4이다. 따라서 8÷4=2는, 4를 몇 번 곱해서 8이 나오느냐, 그것은 2이다 라는 말과 같다. 오호! 그래. 뺄셈이 ‘거꾸로 덧셈’이듯 나눗셈도 ‘거꾸로 곱셈’이구나. 흩어져 있던 것들이 모여 착착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더 생각하고 싶었다. 쪼그리고 앉아 나뭇가지로 땅에 쓰며 생각했다. 그래, 2÷4도 쉽다. 4에 얼마를 곱하면 2가 나오는가? 그렇다, 4×A=2인 A를 찾으라는 말이다, 그래서 1/2, 좋았어!

●나눗셈 제대로 보기

아주 좋아. 그렇다면 1/2÷2/3는? 이것도 다르게 생각하자. 2/3에 얼마를 곱하면 1/2이지? 어디 보자. 그러니까 2/3×A=1/2인 A를 찾는 문제군. 좋아. 왼쪽인 2/3에 역수인 3/2를 곱하면 1이니까 양쪽에 3/2를 곱하자. 그럼 3/2×2/3×A=3/2×1/2이니까 A=3/2×1/2이고 결과는 3/4이다. 아하, 그렇구나, 이래서 1/2÷2/3는 1/2×3/2으로 하면 되는구나.

생각에 발동이 걸리자 옛날에 나를 괴롭혔던 문제도 퍼뜩 생각났다. 2÷0은? 빵 2개를 0명에게 나눠주기라, 아무에게도 나눠주지 않았으니 2인가? 아니다. 빵 2개를 나눠주는 데 받은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까 0인가? 헷갈렸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2÷0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그런 건 없다고만 했다. 왜 없는지, 없다는 것이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시험에 나올지 모르니까 그냥 외워야 했다. 기분이 몹시 나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나눗셈을 다르게 보니 다 알겠다. 2÷0은 0×A에서 A 찾기다. 그렇다면 그런 A는 없다. 어떤 수에 0을 곱하면 절대로 2가 나올 수 없으니까. 아하!

●나눗셈, 정말 대단하다

가만 있자, 그런데 1/2÷2/3가 정말 수학에만 있고 현실에는 없나? 빵을 2/3명에게 나누는 건 억지 맞아. 그래도 다른 사례가 있을 것 같은데. 어디 보자. 그 때 저 앞에 있던 건물이 눈에 뜨였고 내 마음에서는 빛이 번쩍했다. 짧은 막대로 높은 건물의 높이를 잴 수 있다. 자, 해보자. 먼저 땅에서 올려 봐서 막대 끝과 건물 끝이 딱 맞게 막대를 세웠다. 막대까지 거리를 재니 거리가 2/3이고 막대 길이는 1/2이다. 건물까지 거리를 재니 20. 준비는 다 끝났다(그림 1).

이제 수학만 있으면 된다. 두 삼각형들은 닮았으니까 2/3:20=1/2:A라는 비례식을 세웠다(그림 2).

이 비례식이 참이면 20×1/2=A×2/3가 참이다. 여기서 A만 찾으면 끝. 양쪽을 2/3로 나눈다. 그러면 20×1/2÷2/3=A이다. 쨘, 1/2÷2/3 등장이오! 아까 계산한대로 이건 3/4이니까 20×3/4=A. 그래, 저 건물 높이는 15 이네. 저 높은 건물을 재게 해주다니, 나눗셈 정말 대단하다!

나는 일어나서 큰소리 나게 탁탁 손을 털었다. 속이 뻥 뚫렸다. 시원했다. 다시 삶의 지혜를 들으러 들어가야지. 강연장으로 들어가며 나는 생각했다. ‘역시, 수학으로 생각하니 참 즐겁구나.’

○ 더 생각해보기

정답이 없다고 생각하고 다음 문제를 친구들과 토론해 볼까요.

1. 0÷0은 무엇일까?

2. 어떤 수든 거기에 0을 곱하면 항상 0일까? 왜 그럴까?

3. 주위에 1/2÷2/3가 등장하는 다른 사례는 무엇이 있을까?
박병하 ’‘처음 수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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