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5·18사진’속 복면 쓴 시민군 2명 신원 확인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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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세력이 북한군으로 허위주장”… 역사왜곡대책위, 법적 대응 검토

5·18역사왜곡대책위원회는 일부에서 북한군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 5·18민주화운동 당시 복면을 쓴 시민군 2명의 신원이 확인됐다며 14일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5·18역사왜곡대책위원회는 일부에서 북한군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 5·18민주화운동 당시 복면을 쓴 시민군 2명의 신원이 확인됐다며 14일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1980년 5월 25일 오후 1시경 광주 서구 농성동 서광주 한국전력 인근 도로. 임모 씨(52)와 구모 씨(51) 등 시민군 4명이 지프차를 타고 도착했다. 임 씨 등은 당시 상무대(현재 상무지구) 진입도로 인근에 있던 계엄군의 동태를 살피려고 현장에 갔다.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인파 속에 있던 독일 사진기자가 지프차 뒷좌석에 있던 임 씨(사진 오른쪽)와 구 씨를 찍었다. 기자는 얼굴에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어달라고 했으나 인근 건물 옥상에 계엄군이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이 사진은 전 세계에 전파돼 당시 광주 상황을 알렸다.

광주시와 5·18역사왜곡대책위원회는 14일 “일부 세력이 마스크를 쓴 시민군 2명의 사진을 근거로 5·18민주화운동을 북한군이 주도했다는 허위 주장을 하며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왜곡 근거로 사용되는 사진의 주인공이 임 씨와 구 씨인 것으로 확인됐다”며 “두 사람의 당시 행적은 계엄군 수사, 군사재판 기록에 담겨 있어 북한군이 아닌 것이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재판 기록 등에 따르면 17세였던 임 씨는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당시 양복 기능원으로 일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그는 1980년 5월 18일 전남대 정문 앞에서 학생들이 계엄군에게 폭행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현장으로 갔다. 이후 광주역과 금남로에서 시민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는 “당시 어린 나이였고 무식했지만 군인들이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폭행하고 죽이는 것을 보고 분노를 느껴 시민군이 됐다”고 회고했다.

임 씨는 5월 21일 계엄군이 철수한 후 당시 전남도청 2층에 있던 군복을 챙겨 입었다. 동네 후배 구 씨(당시 양화공)를 만나 카빈 소총도 챙겼다. 두 사람은 당시 시민군 기동순찰대(이후 기동타격대로 변경) 1조에 편입됐다. 당시 기동타격대 40명의 임무는 계엄군 동태 파악, 사회질서 유지 활동이었다. 기동타격대는 5월 23, 24일경 광주 서구 광천동에서 부식을 나르던 군 트럭을 발견해 군인 1명을 체포했으나 구급차에 태워 상무대 계엄군에 돌려보내기도 했다.

임 씨 등은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밀고 들어온 전남도청에 있다 붙잡혔다. 그는 “기동타격대 동료 일부가 총에 맞아 죽는 것을 보고 무서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며 “제대로 총 쏘는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임 씨는 이후 군사재판에서 5년 실형을 선고받고 같은 해 10월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그는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 이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임 씨는 당시 아픔과 트라우마를 여전히 앓고 있다. 구 씨는 택시 운전 등으로 생계를 꾸리다 최근 시골에서 농장을 하고 있다. 임 씨는 “시민을 북한군으로 둔갑시킨 악의적 거짓말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5·18역사왜곡대책위원회는 임 씨 등 2명을 북한군으로 매도했던 왜곡 세력에 대해 민형사상 대응을 본격적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원회는 다른 시민군 7명도 사진 촬영은 되지 않았지만 수사, 재판기록에 복면을 쓰고 있었다고 적혀 있어 법적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
#5·18사진#시민군#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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