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돌반지 주문에 수백만원 입금? 알고보니 대포통장의 덫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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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집-금은방 정상계좌 악용한 신종 금융사기 기승

“200만 원짜리 ‘돈 꽃다발’ 주문되나요?”

인천 부평구에서 꽃가게를 운영하는 양모 씨(30)는 2일 지폐로 꽃다발을 만들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최근 꽃송이 사이사이에 지폐를 넣어 만든 돈 꽃다발이 인기라 별 의심을 하지 않았다. 주문을 한 남자는 “회갑을 맞은 장인에게 드릴 선물”이라며 “5만 원권 지폐로 200만 원짜리 돈 꽃다발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남자는 “거래처에서 수금 받을 게 있는데 이 계좌로 보내라고 할 테니 남은 돈은 꽃다발을 찾으러 가면 돌려 달라”고 했다. 보통 2, 3일 여유를 두고 주문하지만 “오늘 당장 필요하다”며 입금할 계좌번호를 빨리 알려 달라고 재촉하는 통에 양 씨는 계좌번호를 불러줬다. 곧이어 양 씨 계좌에는 513만 원이 입금됐다. 두어 시간 뒤 주문자의 처남이라는 사람이 가게를 찾았다. 그는 허둥지둥 200만 원어치의 돈으로 만든 꽃다발과 꽃값 16만 원을 빼고 남은 잔액 297만 원을 챙겨 떠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양 씨 계좌로 돈을 입금한 사람은 보이스피싱 피해자 A 씨였다. A 씨는 자신을 서울중앙지검 검사라고 소개한 남성으로부터 “계좌정보가 다 털려 돈이 빠져나갈 수 있으니 안전한 계좌로 돈을 옮겨놓으라”는 전화를 받고 이 남성이 불러준 양 씨의 계좌로 513만 원을 입금했던 것이다.

그날 오후 양 씨는 대포통장 명의인으로 등록됐다. 금융사기단에 속아 자신의 계좌를 범죄조직에 빌려준 꼴이 된 것이다. 양 씨의 계좌는 거래가 정지됐다. 다른 금융거래도 막혔다. 양 씨는 “매일 꽃값이며 거래처에 입금할 일도 많은데 자동화기기나 인터넷뱅킹은 못 하고 은행 창구에 가서 업무를 봐야 한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하소연했다.

금융감독원은 27일 양 씨의 사례에서 보듯 상거래용으로 사용하는 정상 계좌를 금융사기에 이용하는 사건이 늘고 있다며 주의보를 발령했다. 최근 대포통장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자 상거래를 가장해 계좌번호를 빼낸 뒤 대포통장 대신 이용하는 것이다.

꽃집뿐만 아니라 금은방이나 중고차 매매업체 등 돈 거래가 잦은 업체들이 범행에 이용됐다. 금은방을 하는 도모 씨는 지난달 “돌 반지를 사러 가려고 하는데, 통장으로 송금하면 차액을 돌려줄 수 있느냐”는 전화를 받고 계좌번호를 알려줬다가 대포통장 명의자가 됐다.

아예 돈을 입금했다고 속여 돈을 뜯어낸 사례도 있었다. 정미소를 운영하는 피해자들에게 전화로 쌀을 주문한 뒤 허위로 돈이 입금됐다는 문자를 발송하고는 다른 계좌로 차액을 입금 받아 빼돌리는 수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실제 물건 가격보다 과도하게 많은 돈이 입금됐다면 일단 금융사기를 의심하는 게 좋다”며 “범행의 도구로 이용된 계좌에 대해서는 지급정지가 되고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금융사기가 의심되는 경우에는 거래하는 금융회사에 송금인의 인적 사항을 확인하고, 문제가 있다면 거래에 응하지 말고 우선 수사기관에 신고하라고 금감원은 조언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꽃#돌반지#대포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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