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사내하도급 첩첩… 노조 소송戰에 정부는 뒷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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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등 켜진 노사관계]<上>쏟아지는 노동이슈… 해법 못찾는 기업현장

《 “모든 근로자에게 정기적 일률적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 지난해 12월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953년 근로기준법에 정의된 통상임금에 대한 법률상 정의를 60년 만에 내놓으면서 올 한 해 노사는 통상임금을 이슈로 첨예하게 맞섰다. 정부가 통상임금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아 사업장들의 혼란은 더욱 커졌다. 이 밖에도 근로시간 단축, 60세 정년 의무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굵직굵직한 노사 관련 이슈가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저성장에 빠진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올해는 기업에 부담을 주는 노동 이슈가 특히 많았다. (기업이) 외국에 공장을 지어 볼까 하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임부회장이 최근 ‘한국경제 긴급진단’을 주제로 열린 경총포럼에서 한 쓴소리다. 전문가들도 이런 지적이 나올 만하다고 입을 모은다. 10월 말 기준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 타결률은 51.5%에 불과하다. 경총이 임협이 타결되지 않은 기업들에 이유를 물었더니 ‘노동 관련 쟁점으로 인한 노사 간 입장 차이’ 때문이라는 응답(34.8%)이 가장 많았다.

○ 통상임금 문제는 1년째 제자리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정기적, 일률적, 고정적으로 받은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단했지만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면서 현장에선 혼란이 심화되고 있다.

10월 부산지법의 르노삼성자동차에 대한 통상임금 1심 판결은 대법원이 밝힌 고정성과 신의칙 원칙과 다르다는 게 경영계의 판단이다. 르노삼성차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 뒤 나온 1월 정부 지침에 따라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주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믿었는데 판결이 다르게 나왔다”고 말했다. 르노삼성차는 지난해 현금성 자산이 5121억 원이라는 이유 등을 들어 법원이 상여금을 2008년 10월분까지 소급 적용하라고 한 데 대해서도 신의칙 원칙에 어긋난다며 반발했다. 사측과 노조 모두 항소해 르노삼성차 노사의 통상임금 문제는 내년으로 넘어가게 됐다.

현대자동차의 통상임금 소송 결과가 나오면 노동계의 요구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가 가진 상징성 때문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만약 현대차 노조가 승소하면 직원들이 ‘현대차는 되는데 왜 우리는 안 되냐’며 통상임금 확대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며 우려했다. 업계에서는 현대차 노조가 승소하면 현대차가 부담해야 할 인건비가 3년 치 소급분과 특근 비용 등을 포함해 5조3000억 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런 점을 감안해 법원도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당초 11월 7일 선고를 내릴 예정이었지만 연기했다. 12일에도 추가 변론을 한다. 법원 관계자는 “올해 선고는 사실상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 뒷짐 진 정부도 문제

사내하도급 문제도 노동계에 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9월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일하는 사내하도급 업체와 부품업체 근로자들 모두 현대차 근로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현대차는 항소하는 한편 지난달 울산공장 내 부품업체와 협력사 200여 곳에 사무실과 조립작업장 등을 외부로 이전해 달라고 요청했다.

법원은 9월 기아자동차에 이어 이달 4일에는 한국GM에 대해서도 불법 파견 판결을 내렸다. 하도급 비율이 높은 조선 철강 등 다른 업종에서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판결대로라면 협력업체 근로자까지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하도급 비율이 조선업은 61%, 철강은 44%에 이른다. 파견 근로가 엄격히 제한된 탓에 하도급을 쓰는 건데 이를 막으면 노동 유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도리어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경총 관계자는 “통상임금과 사내하도급 모두 기업이 정부 지침에 따라 해오던 관행과 반대되는 판결이 나오면서 문제가 생겼다. 정부가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혀주기만 해도 혼란이 줄어들 텐데 눈치만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통상임금 등의 이슈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으니 근로자들은 ‘우리도 소송 한번 해보자’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결해야 할 노동 이슈는 쌓여 있다. 2016년부터 60세 정년이 의무화되지만 이를 위한 여건은 갖춰지지 않았다. 정부가 최근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를 시사한 점도 새로운 노사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매년 근로시간 단축 관련 법안을 입법하겠다고 하면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 교수는 “국내외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노사관계까지 불확실성이 있다면 어느 기업이 사람을 뽑겠는가”라며 “정부가 일자리를 창출한다면서 기업들의 고용 비용을 늘리고 고용 경직성은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3조원 적자에도… 파업수위 높이는 현대重 노조 ▼

추가 임금 인상안 입장차 못좁혀… 17일 7시간 세번째 부분파업 예고


“현대자동차 수준으로 임금을 올려 달라.”

국내 최고의 직장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현대중공업의 노조는 이런 주장을 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다. ‘19년 무분규’ 기록을 깨고 지난달 27일과 이달 4일 각각 4시간 부분파업을 한 데 이어 17일에도 7시간 부분파업을 예고했다. 노사가 팽팽히 맞서면서 협상이 올해를 넘길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회사가 2, 3분기에 창업 이래 최대 규모의 영업손실(각각 1조1037억 원, 1조9346억 원)을 냈는데도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조에 비판이 쏟아진다. 권오갑 사장은 “회사가 정말 어렵다. 경영상황이 좋아지면 돌려주겠다”며 파업 중단을 호소하는 편지를 조합원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노조는 “경영 부실의 책임을 조합원들에게 지우지 말라”고 맞섰다.

노조는 조선 3사 계열사 중 하나인 현대미포조선이 5일 임·단협 잠정합의안을 가결하자 이마저 비판했다. 잠정합의안 내용이 현대중공업 사측이 지난달 5일 제시했던 최종안에서 ‘상품권 20만 원 제공’ 등을 제외하고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다. 합의안에 포함된 △기본급 3만7000원 인상(호봉승급분 포함) △격려금으로 통상임금 100%(주식)+현금 300만 원 지급 △상여금 700%를 통상임금에 포함 등이 그것이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임금 13만2013원 인상 △성과급 250%+추가 △호봉승급분 2만3000원을 5만 원으로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사측은 난감해한다. 가뜩이나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면 임금이 인상되는데 노조가 무리하게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사측은 4년 차 생산기술직 직원을 기준으로 상여금 700%가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임금이 10.6% 오른다고 추정한다.

노사는 5일까지 59차 교섭을 벌였지만 추가 임금 인상안을 두고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노사가 임·단협을 곧 마무리할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측한다. 노조가 이번 주 파업 일정을 잡지 않은 데다 사측과 교섭을 계속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노조 관계자도 “파업은 교섭에서 사측으로부터 추가 안을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이라며 “이번 주에 숨고르기를 하는 것도 교섭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통상임금#사내하도급#노사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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