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철호]‘연구 안하는 교수’ 면죄부 준 교육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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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5년 無논문 교수 징계하자… 교육부 “활동은 많아” 취소 결정
철밥통 교수사회 개혁에 찬물

이철호·사회부
이철호·사회부
기자가 기사를 쓰지 않는 것만큼 눈치 보이는 일은 없다. 그랬다간 “밥값을 못 한다”는 얘기를 듣기 십상이다. 기자가 밤낮없이 취재에 나서는 것도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해서다.

기사를 써야 존재가치가 있는 기자처럼 대학교수에게 가장 중요한 의무는 연구다. 하지만 65세 정년이 보장되는 ‘테뉴어(종신직) 교수’만 되면 연구를 조기에 접는 교수가 많아 대학들은 골머리를 썩어 왔다. 이런 관행을 깨기 위해 중앙대는 올해 8월 국내 대학 중 최초로 최근 5년 연속으로 연구성과 최하 등급(C)을 받은 교수 4명에게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이를 두고 대학가에선 “연구 안 하는 ‘철밥통’ 교수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는 개혁”이라는 찬사가 많았다.

하지만 이런 중앙대의 교수 사회 개혁 드라이브에 최근 급제동이 걸렸다. 지난달 26일 교육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가 징계를 받은 중앙대 A 교수가 제기한 소청심사에서 ‘징계 취소’ 결정을 내린 것이다.

문제의 A 교수는 2009년부터 지금까지 펴낸 논문이 하나도 없다. 총장이 “교수님 제발 논문 좀 써주세요”라는 식의 e메일까지 보낼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A 교수는 학회 발표, 토론회 참석 등을 이유로 논문을 쓰지 않았다. 결국 학교는 그에게 ‘지속적 업무 태만’을 사유로 징계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교육부는 교수의 본업인 연구에 소홀했던 A 교수를 업무 태만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연구실적 이외 수업, 사회봉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A 교수가) 업무 태만까진 아니라고 봤다”고 말했다. A 교수는 3일 통화에서 “노벨상 수상자들도 논문을 많이 안 쓴 사람이 많다”며 “학교가 연구의 자유를 침해하고 테뉴어 제도에 도전하고 있다”고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가에선 교육부의 결정을 두고 교수의 연구 태만에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게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교수를 위한 정당한 권리 보장이다”라고만 했다. 하지만 “교수 본연의 ‘의무’인 연구에 소홀한 교수에게 모든 ‘권리’를 보장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는 기자의 지적에는 제대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교육부가 스스로 개혁하려는 대학에 찬물을 끼얹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철호기자 irontiger@donga.com
#교수#연구#면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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