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재포장에 7000억… 정작 급한 소방관 충원은 뒷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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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개 부처 2015년 ‘안전예산’ 살펴보니
노후함정 예산 21억 전용한 해경… 2014년보다 100억 늘려 1400억 요구
전문가 “세금으론 재원조달 어려워… 사고원인 제공자 부담금 물려야

정부 부처들이 신청한 안전예산의 면면을 보면 ‘안전’을 강조하는 구호만 요란했지 실제로는 세월호 참사 이전과 달라진 게 별로 없다. 국가 전반의 안전을 책임질 컨트롤타워가 없어서인지 각 부처들이 과거 예산 요구안의 구성만 살짝 바꿔 안전예산이라고 포장한 사례가 많았다.

전문가들은 안전예산의 구조를 사회 전반적인 안전도를 실질적으로 높일 수 있도록 조정하는 한편 관련 재원도 전 국민에게서 걷는 세금에 의존할 게 아니라 재해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나 기업이 내는 부담금으로 상당 부분 충당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도로 재포장 비용도 안전예산?


국토교통부는 도로 유지보수 예산을 신청하면서 ‘안전’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엄밀히 말해 도로 관련 사업은 굽어 있는 길을 똑바로 펴는 것처럼 교통안전에 직접 영향을 주는 사업만 안전예산에 포함된다. 하지만 국토부는 이런 도로 관리예산을 내년에 올해보다 2000억 원 늘어난 1조2706억 원을 요구했을 뿐 아니라 낡은 도로를 다시 포장하는 도로보수 예산도 안전사업에 포함시켜 7000억 원을 추가로 요구했다. 이는 올해 5318억 원에서 약 1700억 원 늘어난 것이다.

일부 부처는 지난해 배정받은 안전예산을 안전과 관련 없는 분야에 써놓고도 올해 안전예산을 더 늘려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해경은 2013년 노후 함정 건조사업비로 1500억 원을 배정받은 뒤 사업비 중 21억 원을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을 납부하는 데 전용했다. 이 예산은 올해 1300억 원으로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해경은 재발 방지책도 없이 내년 예산요구안에서 노후 함정 건조예산을 다시 1400억 원으로 늘려 신청했다.

소방방재청은 내년에 충북, 제주, 경북, 경남 등 전국 4개 지역에 각각 26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안전체험관을 추가로 짓겠다며 예산 배정을 요구했다. 예산당국은 이미 운영 중이거나 현재 건설 중인 안전체험관이 전국 7곳에 이르는 만큼 안전체험관을 추가로 건설해야 하는지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각 부처가 시급하지 않은 안전예산을 늘려 달라고 요구한 반면 사고 위험이 있는 학교 건물 개축 예산 등 현장에서 꼭 필요하다고 지적한 안전예산은 증액 대상에서 제외됐다. 지난해 안전점검에서 D, E등급을 받아 재난 위험시설로 분류된 초중고교 123곳 중 절반 이상인 69곳이 돈이 없어 건물을 개축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교육부는 교육환경개선비 증액을 요구하지 않았다. 교육 전문가들은 무상급식 등 교육복지예산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교육환경개선비까지 늘려 달라고 요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 “증세 대신 부담금 활용할 필요”

기재부는 안전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업에 안전예산이 투입되지 않도록 안전예산 체계를 개편할 예정이다. 현행 안전·공공질서 예산으로 모호하게 분류하고 있는데 이를 △재난과 직접 관련이 있는 ‘S(Safety·안전)1 예산’ △S1 예산에 일부 안전 관련 SOC 예산을 합한 ‘S2 예산’ △S2 예산에 넓은 의미의 도로유지보수비 등을 포함한 ‘S3 예산’ 등으로 세분하겠다는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모든 예산을 세금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재원을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힘들 것으로 본다. 따라서 사고 위험을 키우는 원인 제공자에게 부담금을 내도록 하는 방식으로 안전예산 재원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성은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담금이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세금 징수보다 조세 저항이 적다”며 “이에 앞서 정부는 안전예산이 꼭 필요한 곳에 사용되도록 관리해 전반적인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송충현 balgun@donga.com·홍수용

문병기 기자
#안전예산#소방관#도로 재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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