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나면 어쩌지… 무너지면 어쩌지, 어쩌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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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요양병원 참사 이후]
잇단 참사에 집단불안증 확산

회사원 류미연 씨(29)는 31일 고향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러 대전에 갈 예정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이후 10년간 왕복한 길이지만 이번 방문을 앞두고 부쩍 걱정이 많아졌다. 류 씨는 17일 경부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고속버스 화재를 떠올리며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바로 대피할 수 있게 짐도 줄이고 짐칸에 넣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영화를 즐겨 보는 회사원 이은경 씨(28)는 세월호 사고 이후 극장에 갈 때마다 비상구 안내 영상을 유심히 본다. 얼마 전 회사에서 심장마비에 사용되는 자동제세동기(AED) 사용법 강의를 들을 때도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내용에 집중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위급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불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터미널이나 쇼핑몰은 안전한지, 철거 공사 중이던 건물이 무너지면 어떻게 할지…. 경주 마우나오션 리조트 체육관 붕괴와 세월호 침몰, 서울지하철 상왕십리역 전동차 추돌, 달리던 고속버스 화재, 강남 한복판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 붕괴,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지하철 방화 시도, 요양병원 화재 등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일상에 대한 불안감, 이른바 ‘범불안장애’가 사회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사회적 재난이 반복되고 언론을 통해 소식을 계속 접하는 현 상황이, 시민들을 집단적 불안상태에 빠뜨리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재헌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세월호 이후 원래 공황증세를 앓고 있던 사람의 불안감이 더 커지는 등 재난이 이어지면서 전 국민이 강도나 테러를 목격한 것과 맞먹는 수준의 심리적 외상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난 소식이 연이어 전해져 오고 적합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면 사람들의 감정은 ‘불안감→책임자에 대한 적개심 발생→해결 조치에 대한 반발심→안전에 대한 과대민감증→공포나 심한 불안’의 악순환을 겪게 된다. 박주언 계요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예전엔 무시했을 요인들까지 갑자기 신경쓰다보면 과민해진다. 심하면 우리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는 망상 수준까지 가는 ‘집단 히스테리’가 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안전에 경각심을 갖는 건 좋지만 문제점에만 집착하다 보면 루머에 쉽게 현혹되고, 쉽게 분노하는 등 변칙적 행동이 나올 있다”며 “이제는 해결책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집단 히스테리’를 막으려면 사고 원인을 명백하게 밝히는 과정이 필수다. 채정호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보가 없어 이유도 모른 채 불안감을 느껴야 할 때 ‘집단 히스테리’가 많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채 교수는 “배를 안 타고 회피하는 것보다 배를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게 하려는 의지와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진정한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강은지 기바 kej09@donga.com   
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집단불안증#범불안장애#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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