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사고 일으킨 의료기기 재사용땐 환자에 반드시 알려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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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조항 없는 안전지침 통할까
환자에 통보땐 치료거부 뻔해… 병원, e메일등 ‘꼼수 고지’ 할수도
자칫 숨길땐 되레 안전역행 우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9일 발표한 의료기기 안전 강화 지침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식약처는 이날 사망 사고 등 중대한 부작용이 발생해 회수 대상이 된 의료기기를 병원이 사용할 경우 의무적으로 환자에게 이 사실을 알리도록 하는 내용의 ‘의료기기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을 공포했다. 그동안은 의료기기로 인해 사고가 났을 경우 회수해 점검한 뒤 상태에 따라 정도가 심각하면 폐기하고, 개선해 사용이 가능할 경우 재사용해왔다. 또 의료기기업체는 제품으로 인해 사망 등 중대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신문, 방송 등을 통해 이 사실을 의무적으로 고지해야 했다. 부상 사고일 경우는 의료전문지에, 사람이 다치는 정도가 아니면 해당 업체 홈페이지에 게시하도록 했다.

식약처는 “기존에는 하자가 있었던 의료기기를 고쳐서 사용하더라도 환자가 이를 알기 어려웠다”며 “의료소비자의 권리를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개정안이 의료 안전을 담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수리를 했다고는 하지만 하자가 있었던 것을 알면서 사용할 환자는 거의 없기 때문. 이런 의료기기가 있다거나 권할 경우 병원 이미지도 타격을 입는다. 또 고가의 의료기기일 경우 병원 측이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며 폐기하기도 어렵다. 병원으로서는 환자들이 거부하는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폐기하기도 어려운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개정안은 이날부터 시행됨에도 처벌 조항은 없다. 식약처는 “2년 안에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 강남구에서 대형 성형외과를 운영하고 있는 한 전문의는 “지금도 중소 병원들이 수억 원의 의료기기를 유치할 경우 수익을 내기 위해 무리하게 시술 및 검사를 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이런 상황에서 고지 의무를 제대로 할 병원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재정이 취약한 중소 병원일수록 고지를 피하거나 축소하는 편법을 쓸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병원들이 우편, e메일 등으로 내용을 알리고 넘어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며 “반드시 대면 진료 과정에서 설명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 전문의는 “의료기기에 대한 지식이 없는 환자가 하자 사실을 알 경우 할 수 있는 행동은 거부하거나 받아들이는 것밖에는 없지 않느냐”며 “받아들였을 경우 문제가 생기더라도 고지를 했기 때문에 병원이나 의료기기업체의 책임이 어느 정도 줄어드는 부작용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식약처#사망사고#안기종#한국환자단체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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