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해줄게 송금해” 前妻 계좌로 뒷돈 강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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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홈쇼핑 前간부들 공소장에 드러난 슈퍼 甲질

“조선시대로 치면 조정으로부터 독점 판매권을 받은 ‘시전(市廛)상인’이 횡포를 부려 중소 상인과 납품업자의 뒷골을 빼먹는 꼴입니다.”

홈쇼핑에 납품하고 있는 한 중소업체의 A 씨는 검찰의 롯데홈쇼핑 납품비리 수사를 보면서 이렇게 비유했다. 국가(방송통신위원회)가 지금까지 허가한 홈쇼핑채널은 6개에 불과할 정도로 진입 장벽이 높다. 그것도 지상파 방송의 사이사이에 있는 황금채널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롯데홈쇼핑은 제조·납품업체와 상생하기 보단 높은 진입 장벽을 자신의 배를 불리는 데 이용했다는 것이다.

○ “공적 TV 채널 이용 범죄는 중대 범죄”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서영민)는 롯데홈쇼핑 납품비리 혐의자들에 대해 공무원의 뇌물수수 범죄에 준해 처벌할 방침이다. 국가가 홈쇼핑채널을 허가한 것은 자금력과 매장이 없는 중소업체를 위해 홈쇼핑이 저렴한 매장 역할을 해 달라는 공적 요청이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난주 신모 전 전무에 대한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도 검찰은 “홈쇼핑업체와 납품업체 사이에 갑과 을의 관계가 굳어지면서 중소기업의 상생과 소비자 복지 증진이라는 도입 취지가 무색해졌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납품업체 관계자는 “홈쇼핑 납품을 위해 상품기획자(MD) 한 사람에게 3000만 원까지 써 본 적이 있다”면서 “돈 아니면 안 되는 이 업계 자체를 뒤집어야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검찰은 지금까지 롯데홈쇼핑 전현직 임원 5명을 구속했고 14일엔 신헌 롯데쇼핑 사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20시간 넘게 조사한 뒤 돌려보냈다. 검찰 수사는 신 사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롯데그룹 윗선으로의 상납,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선 이번 수사를 계기로 중소업자 위에 군림하는 홈쇼핑의 슈퍼 갑(甲) 관행까지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전처 계좌까지 주며 ‘뒷돈’ 받아

검찰이 15일 구속기소한 롯데홈쇼핑 이모 전 이사(48)의 공소장에는 ‘갑’의 적나라한 행태가 드러나 있다. 이 전 이사는 2008∼2012년 생활부문장, 방송부문장으로 있으면서 홈쇼핑방송을 통한 제품판매 개시(론칭), 방송지속 여부 판단, 방송시간대 편성 등의 업무를 총괄했다.

검찰 조사 결과 그는 방송을 미끼로 해 다양한 방법으로 뒷돈을 받았다. 직접 납품업체 관계자를 만나 수표를 건네받거나 아들, 아버지, 전처의 계좌까지 납품업체에 알려줘 입금하게 했다. 방송 편의를 부탁하며 돈을 건넨 업체들은 온돌마루, 다이어트 제품, 유리밀폐용기, 김치와 갈비탕, 주방용품 등을 파는 영세업체들이었다. 이 전 이사는 6개 업체로부터 127차례에 걸쳐 9억여 원을 받아 챙겼다.

구속 기소된 정모 전 MD는 한 업체로부터 현금 2억 원을 챙겼고 술 접대를 받던 도중 2800만 원짜리 그랜저TG 승용차를 받기도 했다.

이들의 뒷돈 챙기기는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간 지속됐다. 돈을 주고받은 장소는 주차장, 술집, 한식당, 음식점 등으로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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