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 주소-주민번호… 법원이 가해자에게 알려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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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지법, 판결문에 기재해 송달… “배상 청구인 인적사항 필수” 해명
피해여성, 국가 상대 위자료 청구… “성폭력法엔 누설 금지 조항 있어”

2012년 8월 회사원 A 씨(27·여)는 광주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우연히 만난 일용직 근로자 B 씨(29)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또 다른 절도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B 씨는 A 씨를 성폭행한 혐의도 밝혀져 함께 기소됐다. B 씨는 A 씨를 재판하던 광주지법 목포지원 재판부에 성폭행에 대한 형사배상명령(형사재판 중 손해배상도 함께 요구하는 것)을 신청했다.

그러나 A 씨는 성폭행 악몽을 빨리 잊기 위해 B 씨와 합의했다. 재판부는 양자 간에 합의한 점을 감안해 지난해 10월 성폭행과 형사배상명령은 각하하고 절도 혐의만 적용해 B 씨에게 징역 8개월만 선고한 뒤 법정구속했다.

그런데 A 씨는 목포지원에서 보내온 판결문을 보고 당황했다. 형사배상명령의 각하 결정을 알려주는 것이었는데 A 씨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가 기재돼 있었다. A 씨는 이 판결문이 B 씨에게도 똑같이 보내져 자신의 개인정보가 B 씨에게 노출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보복 범죄를 당할까 두려웠다. 이후 A 씨는 모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 그는 지난해 11월 광주 여성의 전화에 연락해 “성폭행범이 출소 후 다시 찾아올까 두려워 직장을 그만뒀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싶다”고 호소했다.

광주 여성의 전화 등은 대법원과 목포지원에 성폭행 피해자의 2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진정을 했지만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26조 등에 형사배상명령 신청자의 인적사항을 판결문에 기재하도록 한 규정에 따랐을 뿐이라는 답변만 들었다. 여성의 전화 측은 지난해 12월 A 씨에게 국가를 상대로 정신적 위자료 등 3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광주지법에 내도록 했고, 헌법소원까지 검토하고 있다. 이는 성폭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법률 24조에 피해자의 주소, 성명, 나이 등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법원 관계자는 “두 법 규정이 상충되긴 하지만 규정마다 필요성이 있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성폭행피해자#가해자통지#성폭력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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