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전화번호로 걸려온 “엄마, 나 납치됐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목소리까지 흉내 보이스피싱… 농협 女직원-경찰 기지로 막아

“엄마, 나 납치됐어, 살려줘!”

서울 중구 을지로4가의 한 인쇄소에서 일하는 신모 씨(46·여)는 4일 오후 2시 50분경 아들 주모 군(19)의 전화번호로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수화기 너머로 아들의 목소리에 이어 잠시 후 범인들은 신 씨에게 “아들을 살리고 싶으면 당장 2000만 원을 입금하라”고 요구했다.

신 씨는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즉시 근처에 있는 NH농협 을지센트럴 지점을 찾아 먼저 300만 원을 범인들의 계좌로 송금했다. 범인들은 혹시나 신 씨가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도록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돈을 입금할 때까지 전화를 끊지 못하게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신 씨의 집은 서울 중구지만 아들은 1시간 거리인 인천의 한 실업계 공업고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 아들을 평소 걱정하던 신 씨는 아들의 전화번호로 납치 사실을 듣고 이를 그대로 믿었다.

신 씨가 범인들과 나누던 대화를 들은 농협 담당 창구 여직원은 ‘고객의 자녀가 납치됐다’고 판단해 경찰에 오후 3시 5분경 전화를 걸어 “고객님의 자녀가 납치된 것 같다. 경찰 신분을 알 수 없도록 해서 출동해 달라”고 신고했다. 이에 현장으로 출동한 중부경찰서 강력2팀 형사 6명은 신 씨와 필담(글을 써서 대화하는 것)을 통해 아들의 학교와 이름 등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파악했다. 이어 주 군의 학교에 전화를 걸어 확인한 결과 주 군은 수업을 받고 있었다. 납치를 가장한 보이스피싱 사기였던 것.

신 씨는 오후 3시 40분경 아들과 직접 통화를 하며 수차례 인적사항을 묻는 등 진짜 아들이 맞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그사이 경찰은 신 씨가 입금한 300만 원을 지급정지시킨 후 회수해 금전 피해를 막았다. 긴박했던 50분간의 보이스피싱 사기는 담당 창구 여직원의 기지와 경찰의 발 빠른 대처로 막을 수 있었다.

경찰은 범인들이 신 씨와 주 군의 유출된 개인정보를 이용해 인터넷 전화로 보이스피싱을 시도한 것으로 파악하고 범인을 추적하고 있다. 권용하 강력2팀장은 “요즘 자녀의 목소리를 가장해 보이스피싱을 하는 경우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당황하지 말고 5∼10분 정도 시간을 끌면서 주위에 도움을 요청해 자녀의 소재를 먼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납치#보이스피싱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