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꿈을 만나다]한국체육과학연구원 정진욱 박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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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구간’ 넘나드는 극한 운동도 경험해봐야죠”
고교생이 만난 한국체육과학연구원 정진욱 박사

서울 대일고 1학년 박태홍 군은 한국체육과학연구원 정진욱 박사(왼쪽)를 만났다.
서울 대일고 1학년 박태홍 군은 한국체육과학연구원 정진욱 박사(왼쪽)를 만났다.
과거 겨울 스포츠 불모지였던 한국은 어느덧 겨울 스포츠 강국으로 도약했다. 한국은 1992년 알베르빌 겨울올림픽에서 사상 처음 메달을 딴 이후로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종합순위 5위라는 역대 최고 성적을 냈다. 현재 소치 겨울올림픽에도 아이스하키를 제외한 6개 종목에 역대 최대 규모의 선수(71명)를 파견해 선전 중이다.

이처럼 한국 스포츠가 급성장하는 데 도움을 준 숨은 주역 중 하나가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체육과학연구원. 국가대표 선수들의 경기력을 높이기 위해 신체적 기술적 심리적 분석을 토대로 알맞은 훈련 방법을 개발하는 국가 연구기관이다. 소치 겨울올림픽에 대비해 빙상 및 설상 종목에서 체육과학 연구를 했다.

체육과학연구원의 세계를 궁금해하는 서울 대일고 1학년 박태홍 군(17)이 ‘신나는 공부’의 도움으로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 옆에 위치한 한국체육과학연구원 스포츠과학·산업연구실에서 정진욱 박사(38)를 만났다.

실험·통계 바탕으로 훈련법 제안


알파인 스키팀이 평형감각을 측정한 기구 ‘동적평형성 측정기’. 움직이는 발판에 한 발 또는 양발로 올라가 측정인의 무게중심이 중앙에 있을 때의 시간을 잰다. 운동역학실험실 김지현 조교의 도움으로 박태홍군이 평형성을 측정하고 있다.
알파인 스키팀이 평형감각을 측정한 기구 ‘동적평형성 측정기’. 움직이는 발판에 한 발 또는 양발로 올라가 측정인의 무게중심이 중앙에 있을 때의 시간을 잰다. 운동역학실험실 김지현 조교의 도움으로 박태홍
군이 평형성을 측정하고 있다.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은 무슨 일을 할까? 박 군은 체육과학연구원이 하는 일에 대해 물었다. 체육과학연구원 소속 연구원들은 운동선수가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훈련 방법을 만든다.

감독이 연구원이 제시한 훈련 방법을 받아들이면 본격적으로 선수의 체력을 테스트하고 훈련을 참관해 문제점을 찾고 개선 방법을 연구한다. 운동선수의 적정한 연금 지급 문제, 운동선수 지도자 양성 등을 다루는 정책적 자문도 맡는다.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이 하는 일은 크게 역학, 심리학, 생리학 세 분야로 나뉜다. 운동역학은 체육의 기술 분석을 담당하는 학문. 소치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진행한 봅슬레이팀 선수들이 힘주는 방향에 따른 속도 변화 연구가 바로 운동역학 일부다. 심리학은 맨몸으로 시속 100km를 넘는 고속활강을 해야 하는 루지, 스켈리턴 선수들이 극한의 공포와 불안을 이겨낼 수 있도록 ‘멘털 강화 방안’을 모색하는 분야다.

정 박사의 주전공인 운동생리학은 운동할 때 일어나는 호흡, 근육 기능, 신진대사 등과 같은 몸의 변화를 연구하는 분야다. 소치 겨울올림픽 진출 종목 중 알파인 스키를 맡은 정 박사는 올림픽 준비를 하면서 알파인 스키 대표팀에 근력과 균형 운동에 중점을 둔 트레이닝을 제안했다. 알파인 스키는 몸의 중심을 끊임없이 좌우로 이동해야 하므로 균형을 잡기 위해서 근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

“훈련을 마친 운동선수들에게서 ‘젖산’이라는 성분을 채취하기 위해 손끝에서 소량의 피를 뽑아요. 젖산 농도가 높으면 강도 높은 운동을 했다는 뜻이에요. 피로가 쌓였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무거운 것을 드는 근력운동을 줄이라는 등의 조언을 하지요.”(정 박사)

전국 누비며 체육 연구


현재 한국체육과학연구원엔 연구원 19명이 근무한다. 1인당 3∼5개의 운동 종목을 맡는다. 각 종목 선수들의 훈련 장소에 직접 찾아가 관찰하고 분석해야 하므로 출장이 잦은 편. 정 박사는 “수영 선수들의 몸 상태와 운동 방법을 확인하기 위해 충북 진천선수촌 수영장을, 스키 선수를 만나기 위해 평창에 위치한 스키장을 수시로 다닌다”고 말했다.

올림픽이 한창인 요즘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의 사무실에는 전화벨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컬링과 봅슬레이가 최근 두각을 보이면서 대중과 언론으로부터 관심이 높아져 관련 문의가 많아진 것.

그간 생소했던 두 종목에 대해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은 ‘컬링 스위핑(빗질)에 따른 얼음 표면의 온도 변화가 스톤에 미치는 연구’ ‘봅슬레이 출발 구간에서 가해지는 힘 측정 장비 개발 연구’ 등 체육과학을 접목하면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도왔다.

그 결과 여자 컬링 대표팀은 이번 소치 올림픽에서 강호 일본과 러시아 대표팀을 이겼다. 봅슬레이팀은 1월 ‘2013∼2014 아메리카컵’에서 처음으로 4인승 금메달을 따는 등 결실을 보기도 했다.

“체육과학연구원은 운동선수들이 기존 실력에서 1%의 기량을 더 발휘하도록 도와요. 이미 운동선수들은 체력적으로나 기술적으로 99% 완성돼 있지만 여기에 체육과학을 접목해 정점을 찍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지요.”(정 박사)

박사학위 취득은 필수


“한국체육과학연구원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박 군)

한국체육과학연구원 채용은 서류, 논술, 프레젠테이션, 면접까지 4단계로 나뉜다. 전문적인 연구를 맡는 만큼 체육학·운동생리학·운동역학 등 관련 분야의 박사학위는 기본 지원자격이다. 연구 논문과 칼럼을 쓸 일도 많아 글쓰기 실력도 중요하다. 논술시험이 채용 과정에 포함된 이유다.

일반적으로 체육과학연구원들은 사회체육학과, 체육교육과 등 체육 관련 학과를 졸업한 뒤 운동생리학, 역학, 심리학 또는 공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정 박사는 서울대 체육교육학과에서 운동생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 군이 “체육과학연구원에게 필요한 태도는 무엇인가요”라고 묻자 정 박사는 “조력자로서 만족하는 자세”라고 답했다. 체육과학연구원은 대회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운동선수들 뒤에서 조력자로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선수들에게 과학적 결과를 토대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대중에게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도움을 줬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사명감을 갖고 연구에 임해야 한다는 것.

“‘어떤 방법이 경기력 향상에 효과적이겠다’는 연구가설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운동을 섭렵하고 인체의 한계를 넘나드는 운동도 해봐야 해요. 체육과학연구원을 꿈꾼다면 운동하다 죽을 것 같은 순간을 일컫는 사점(死點)과 그 구간을 넘기면 몸이 편해지는 세컨드윈드란 것도 직접 경험해 봐야 해요. 그래야 운동선수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조언을 해줄 수 있답니다.”(정 박사)

글·사진 이승현 기자 hyun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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