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할머니의 ‘비밀’…잔인해요, 너무” 세계가 흐느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7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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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한 볼살이 채 빠지지 않은 앳된 나이에 엄마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무거운 '비밀'을 안게 된 소녀,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이 온몸에 문신으로 남은 여성, '그 일'이 있기 전의 나이로 계속 어려지는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처를 생생히 증언하는 만화가 30일 프랑스 앙굴렘에서 열리는 '2014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 출품된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은 올해는 참혹한 전쟁 실상과 전시 여성 성폭력 문제를 고발한 만화가 다수 선보인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 여성가족부도 세계 최대인 이 만화축제에 참가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전 세계에 알리는 기획전 '지지 않는 꽃'을 연다.

기획전에는 프랑스 현지에서 만화를 출간해 이름을 알린 김금숙(43) 박건웅(42) 수신지(34) 작가가 국내 유명 작가들과 나란히 참가해 눈길을 끈다.

김 작가는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비밀'을 그렸다. 프랑스 유학파 출신인 김 작가는 현지에서 자전적 만화 '아버지의 노래'(2012년)를 출간해 '문화계 저널리스트들이 뽑은 언론상'을 수상했다. 그는 "할머니들이 평생 상처를 비밀로 간직한 채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 일본의 거짓과 위선에 맞서려면 살아있는 할머니의 증언보다 더 유력한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일본 군인이 재미삼아 새겨놓은 문신이 온 몸에 남아 있는 정옥선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문신'을 그렸다. 목판화 기법으로 그린 작품에는 심신이 약한 사람은 주의하라는 경고문구가 적혀 있다.

"할머니가 겪은 위안부 생활은 만화로 옮기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했습니다. 세세한 묘사는 최대한 가리고 진실을 선명하게 전달하려고 흑백 대비로 그렸습니다. 고향에 돌아온 할머니는 새 옷으로 갈아입었지만 몸에 새겨진 상처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노근리 사건,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다룬 만화로 프랑스 만화 비평가 기자협회가 제정한 2007년 '아시아 만화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프랑스에서 만화 '3그램'을 출간했던 수 작가는 '83'을 출품한다. 83이란 만주사변이 일어난 1931년부터 2014년까지 83년의 시간을 뜻한다. 만화 속 할머니 모습은 점점 어려져 어린 소녀로 돌아가 친구와 함박웃음을 짓는 장면에서 끝난다. 수 작가는 "수요집회에서 본 할머니들의 표정이 어둡고 지쳐 보였다. 할머니가 웃는 모습을 그리려면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던 과거로 시간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할머니들의 상처를 만화로 옮기는 일은 작가들에게도 고통이었다.

"할머니들이 직접 그리신 그림을 봤어요. 그리면서 얼마나 힘드셨을지, 세상에 알리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컸기에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그림으로 옮기셨는지…. 저도 위안부 문제를 알면 알수록 마음이 아파서 그리기를 중단하고 싶었어요."(수 작가)
"그분들의 상처와 아픔이 너무나도 크기에 감히 공감했다고 말하기도 어려워요. 어린 나이에 겪었을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상처, 그리고 평생 겪은 후유증을 생각하니 같은 여성으로서 목이 메입니다."(김 작가)

그럼에도 기어이 만화로 그려낸 이유는 만화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박 작가는 "무거운 소재가 만화라는 가벼운 매체를 만나면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된다. 위안부 이슈가 한일 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 문제임을 알리는데 우리 작품들이 도움을 줄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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