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꿈틀 신나는 진로]유명 디자인스쿨?… “최소 5년은 현장에서 고생해야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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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서울 성동글로벌경영고 글로벌패션과 2학년 이수연 양(17·가운데)은 15일 서완석 입체패턴연구소 소장(오른쪽)과 김홍범 크레스에딤 대표를 서울 중구 모즈복장학원에서 만나 패션디자인 분야 진로에 대한 궁금증을 풀었다.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서울 성동글로벌경영고 글로벌패션과 2학년 이수연 양(17·가운데)은 15일 서완석 입체패턴연구소 소장(오른쪽)과 김홍범 크레스에딤 대표를 서울 중구 모즈복장학원에서 만나 패션디자인 분야 진로에 대한 궁금증을 풀었다.
《 동아일보 교육섹션 ‘신나는 공부’는 교육부, 고용노동부와 공동 기획으로 청소년의 진로 탐색을 돕기 위한 연중기획 시리즈 ‘꿈틀꿈틀 신나는 진로’를 연재합니다. 시리즈를 통해 각 직업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명장을 인터뷰해 청소년이 자신의 끼를 찾아 꿈을 펼치는 데 도움이 되는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진로·직업 정보를 제공합니다. 시리즈 제목인 ‘꿈틀꿈틀’은 청소년들의 ‘꿈’이 자라나는 ‘울타리’라는 의미의 ‘꿈틀’과 꿈이 자라나는 모습을 상징하는 의태어 ‘꿈틀’의 합성어입니다. 》

최근 TV와 영화에 등장하는 패션디자이너의 화려한 모습을 보면서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청소년이 늘었다. 하지만 이런 학생 중 상당수는 ‘대학 패션디자인과에 진학하겠다’고 생각할 뿐 구체적으로 어떤 진로 경로를 거쳐야 경쟁력 있는 패션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서울 성동글로벌경영고 글로벌패션과 2학년 이수연 양(17)도 마찬가지. 이 양은 최근 열린 ‘제48회 전국기능경기대회’ 의상디자인 부문에서 금메달을 받은 패션디자인 분야 꿈나무지만 진로를 어떻게 개척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럽다.

이 양은 15일 ‘꿈틀꿈틀 신나는 진로’의 도움으로 양장 명장인 서완석 입체패턴연구소 소장(58)과 김홍범 크레스에딤 대표(35)를 서울 중구 모즈복장학원에서 만나 패션디자인 분야 진로에 대한 궁금증을 풀었다.

서 명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단사로 일을 시작해 2004년 대한민국 최초의 양장 명장이 된 패션디자인 ‘입체 패턴’ 분야의 권위자다. 김 대표는 최근 주목받는 실력파 디자이너.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선정한 ‘콘셉트코리아’ 프로젝트에 이상봉, 손정완 등 정상급 디자이너와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할 패션디자이너 5명 가운데 한 명으로 뽑혔다.

[진로선택] 패션디자이너는 화려한 직업?


“유명 식품이나 화장품은 한 번 개발하면 길게는 수십 년간 계속 판매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패션 분야는 한 시즌이 지나면 끝입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야 하지요. 노동 강도가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서 명장)

서 명장은 패션디자인 진로를 선택하려는 청소년들에게 ‘환상을 버리라’고 충고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모습에 이끌려 진로를 결정한 학생은 현장에 나가 치열한 경쟁과 높은 노동 강도를 겪으면 중도에 포기하기 쉽다는 것.

서 명장은 “매년 대학 패션 관련 학과와 유명 디자인스쿨 졸업생만 수천 명이다”라면서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본기가 없으면 살아남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차별화된 능력은 어떻게 갖출 수 있을까. 이 양이 “대학에서 패션디자인 관련 전공을 해야 할까요?”라고 묻자 서 명장은 “디자인 감각이 있어도 패턴과 봉제 등 기본기가 부족하면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면서 “대학에 진학하는 것보다 패션디자인 산업현장에서 일을 시작하는 것이 장기적으론 더 유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 대표도 같은 의견을 내놨다. 김 대표는 “나도 대학 패션디자인과를 졸업했지만 패턴과 봉제에 대한 교육은 기초적인 수준이라 현장에서 활용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해외유학] 실력 향상 위해 유학은 필수?


“기능대회에 입상한 실력 있는 선배 중에도 대학에 진학한 경우가 많아요. 해외 유명 디자인스쿨을 졸업하면 훌륭한 디자이너가 되는 데 유리하지 않을까요?”(이 양)

서 명장은 “우리나라 유명 디자이너 중 해외 패션스쿨 출신이 누가 있나요?”라고 되물었다. 이 양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자 서 명장은 “미국의 ‘파슨스디자인스쿨’, 영국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 등 세계적인 디자인스쿨로 유학을 떠난 학생들이 방학 때 한국에 들어와 패턴을 배우고 간다면 믿겠느냐”고 귀띔했다. 유명 디자인스쿨 교육이 가진 장점도 있지만 주로 창의성과 관련된 수업이 진행되므로 기본기를 쌓기에는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

패션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바로 해외유학을 떠나려는 학생이나, 현장에서 2년 정도 짧게 일한 뒤 실력을 쌓는다며 유학을 떠나려는 요즘 학생들의 모습에 대해서 서 명장은 “한국말로 패턴과 봉제를 배워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시기에 유학을 가면 학습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학 패션디자인 계열에 진학하는 학생은 어떻게 실력을 쌓을 수 있을까. 김 대표는 “대학에서 현장실습을 나온 인턴들과 일해보면 상당수는 좋은 학점을 받는 데만 신경 쓰고 정작 실무경험을 쌓으려는 노력이 부족한 편”이라면서 “나도 패션디자인 학과를 나왔지만 기본기는 학교 수업보단 패션 공모전을 준비하며 쌓았다. 2년간 학교에서 먹고 자며 10개가 넘는 대회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4년씩 공부하면 옷을 만들 수 있을까요? 현장에서 1년을 일한 사람보다 어려울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을 겪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견디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느냐고요? 5년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서 명장)

글·사진 이태윤 기자 wolf@donga.com

모델리스트’란?

서완석 명장의 직업은 모델리스트(modelist)다. 주로 패션디자이너가 구상한 스케치를 받아 ‘옷의 기본 모양(패턴)’을 만드는 일을 한다. 이 때문에 모델리스트는 패턴사, 패터너, 패터니스트, 패턴디자이너, 재단사 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전문성을 갖춘 모델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패턴을 만드는 일 외에도 봉제와 디자인도 능숙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모델리스트가 되기 위해 익혀야 하는 패턴의 유형은 크게 △평면 패턴 △CAD(Computer Aided Design) 패턴 △입체 패턴 등 세 가지. 서 명장의 전문 분야인 입체패턴은 마네킹 표면에 옷감을 부위별로 부착하면서 디자인을 수정하는 방식. 한 벌의 옷을 신체 부위별로 각각 나눠 만든 뒤 다시 마네킹에 부착하므로 신체의 곡선과 소재의 특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

모델리스트는 직업 특성상 정년의 구애를 받지 않고 70, 80대까지도 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실력이 뛰어난 모델리스트의 연봉은 1억 원이 넘는다고 알려졌다.

▼ 패션디자인 분야 진로는?
명장이 말하는 패션디자인 분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패션디자인 명장들은 앞으로 패션디자인 분야가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내다볼까.

이런 변화에 맞춰 패션디자인 분야에 진출하려는 청소년들은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할까. 서완석 입체패턴연구소 소장(58·양장 명장), 양창선 국정사양복점 대표(64·양복 명장), 이기도 솔패션 대표(70·패션디자인 명장), 이정구 골드핑거 양복점 대표(63·양복 명장), 장일남 장일남 컬렉션 대표(57·패션디자인명장)가 말하는 패션디자인 분야 진로의 특징을 살펴보자.
“국민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나만의 패션과 나만의 옷을 원하는 경향이 늘고 있습니다. 앞으로 소량 생산되는 희귀성 있고 가치 있는 옷을 원하는 트렌드에 맞춰 패션디자인 업계에 뛰어든다면 상당히 경쟁력이 있을 겁니다.”(양창선 명장)

패션디자인 분야 명장 5명은 모두 패션 디자인 분야의 비전을 밝게 봤다. 하지만 명장들은 “국내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지만 글로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이므로 차별화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기도 명장은 “글로벌 SPA 브랜드의 국내 진출로 국내 중저가 브랜드 및 동대문시장 소규모 상인들의 매출이 줄고 있다”면서 “옷을 만드는 능력뿐만 아니라 디자이너로서의 감각까지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완석 명장은 “과거엔 중국 보따리 장사들이 동대문에서 옷을 사서 중국에다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거꾸로 중국 옷을 사다가 동대문에 파는 현상이 벌어질 정도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면서 “한국인의 체형에 맞춘 디자인과 색상을 반영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구 명장은 “의상제작 현장 실기교육은 물론이고 디자인, 체형, 색채, 패턴, 맞춤 시스템, 원부자재 등 패션디자인에 필요한 다양한 지식을 익혀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태윤 기자 wol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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